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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1-17 조회수 : 2365

왜 그리스도를 만나야 사랑이 가능해지는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첫 두 제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짧은 복음 안에 요한의 구원관이 다 들어있습니다. 
 
우선 요한에게는 구원자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세례자 요한인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교회라 볼 수 있습니다. 
그 인도자는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며 그리스도께로 안내해줍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우리 죄를 위해 희생되셔야 하는 구세주를 상징합니다. 
요한에게 죄는 ‘사랑하지 못하는 것’, 혹은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안드레아가 베드로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계명을 완성한 것입니다.
요한에게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킴과 복음을 전함은 숫자 ‘10’으로 상징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시간이 “오후 네 시쯤”이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당시 시간으로 ‘열 시’를 ‘오후 네 시’로 옮긴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께 성령을 받음으로써만 완성됩니다. 
 
베드로는 안드레아에게 복음을 전해 받고 시몬에서 케파로 이름이 바뀝니다. 
새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도 ‘10’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이렇듯 이제 형제들에게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합니다. 
요한은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이 없어야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나의 것을 내어주는 ‘모험’인데, 나의 생존이 걱정된다면 내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어지고 그래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불 밖은 위험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삶도 두려움에 싸이면 자기 안으로 숨어듭니다. 
그러나 밖의 멋진 세상을 구경도 못 하고, 사랑도 못 하며 이불 속에서 불안해하며 살다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그렇게 살기 싫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망률 1위 스포츠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혹시 안전장치(로프)를 하지 않고 맨몸으로 암벽을 등반하는 스포츠인 프리솔로(클라이밍)을 아십니까? 
유튜브에 보면 이런 영상들이 여럿 올라와 있습니다. 
 
로프에 몸을 의지하는 것도 끔찍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맨몸으로 작은 틈, 작은 돌기를 찾아서, 거기에 자신의 몸을 의지하고, 초크가루를 묻힌 손가락 끝으로 암벽에 매달리며, 오르는 클라이밍 방법입니다. 
단 한 순간의 실수로 추락할 수 있기에 아주 조금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암벽 곳곳에는 이들을 절벽에서 추락시킬 많은 위험한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절벽에서 돌출되어 나온 작은 암석 조각, 손톱만 한 크기의 움푹 들어간 홈 등, 중요한 이 홀드들이 암벽등반가들의 몸무게를 지탱해 줄 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절벽 오르기를 할 턱에는 모래와 자갈들이 있어서 손을 미끄러지게 할지도 모릅니다. 
날씨도 매우 중요합니다. 
산악지형에서 돌풍이라도 불면 손가락에 의지하고 있는 몸이 흔들릴 수 있으며, 소나기라도 지나가면, 암벽이 미끄럽게 됩니다. 
물기는 손가락의 땀을 제거하고,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초크(하얀가루)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바위에 손가락을 베이기라도 하면, 절벽 등반을 중지하고, 꼼짝달싹 못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2019년 오스카상(장평 다큐멘타리 부문)을 수상했던 프리솔로 등반가 ‘알렉스 호놀드’의 엘카피탄 등반 과정을 보면 오금이 저립니다. 
그는 23살 나이에 300m가 넘는 문라이트 버트레스 암벽과 롯데타워보다 높은 기암절벽 하프돔을 
프리솔로로 오르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6월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유명한 914미터 절벽 엘캐피탄을 도전합니다. 
안전장치를 하고도 사고가 자주 나는 악명 높으면서도 최상 등급의 난이도를 넘어서는 오직 손가락 첫 마디만 이용해서 올라야 하는 무서운 곳입니다. 
 
그런데 그 손가락 하나 미끄러지면 한없이 밑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그 시간 동안 호놀드는 전혀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람을 느끼고 새소리를 들으며 평안한 마음으로 등정했다는 것입니다. 
보는 사람만 후들후들합니다. 
 
어떻게 죽음의 문턱에서 손가락 몇 개로 버티고 있으면서도 무섭지 않았을까요? 
그에겐 안전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떨어질 수 없다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한순간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무려 9년 동안 준비를 하였습니다. 
시도하기로 하고는 무려 50차례나 로프 등정을 하며, 루트에 존재하는 홀드들의 위치와 촉감 등을 
세세히 살피며 기록하고, 또 그것들을 암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홀드에서 다음 홀드로 이동하기 위한 손동작과 발동작을 시각화(이미지 트레이닝)하며 
계속 그 상황을 상상하고 연습했습니다. 
등반 하루 전날은 홀드와 턱 등, 손이 닿을 장소들에 있는 모래와 자갈들을 직접 모두 제거했습니다. 
 
그도 프리솔로잉에 대해 큰 공포와 두려움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번 등정할 때마다 사고에 대해 생각한다고 합니다. 
프리솔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정’인데, 오직 ‘반복과 연습’만이 그런 마음의 평정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리 준비하고, 미리 연습하고 모든 절차를 스스로 완벽하게 하는 것. 
이것이 그 극한의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완벽하게 성취해내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어떤 여자 청년은 남자들이 자신을 좋아하면 그들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떠나가려 하면 불안하고 잡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소유욕입니다. 소유욕은 생존 욕구입니다. 
이렇게 생존 욕구를 이기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놓치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만. 쫓아다니게 만듭니다. 
그러다 자신 이불에서 나오지 않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과 머물고자 했던 것은 이런 자신 안에 갇혀있는 그 두려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잃는 두려움을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생존 욕구는 그리스도와 머물 때 해결됩니다. 
그분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내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그런 믿음을 갖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호놀드가 로프에 의지해 수없이 연습했기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며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리스도와 머무는 시간을 ‘기도’라 합니다. 
그분과 함께 머물 줄 알 때 사랑의 계명이 완성됩니다. 
사랑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계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과 머물다 보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분 안에서는 수없이 실패하고 떨어져도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분 안에서만 참 사랑이 가능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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