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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나요?


글 | 배기선 영덕막달레나 수녀
(성바오로딸수도회, 심리학박사)

 미국 코넬대학 인간행동연구소에서는 대규모 역학조사를 통해 열정적 사랑의 수명이 평균 18개월에서 30개월에 불과하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정말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걸까요?

 사랑에 빠지면 본능을 관장하는 중추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원초적 기쁨과 활력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또한 마약의 주성분과 동일한 계열의 신경전달물질 수치가 증가하여 이성이 마비되고 열정과 행복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본성으로 인해 우리 몸은 일상에서 벗어난 이러한 상태를 일종의 스트레스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내성을 길러 호르몬 변화에 적응하고 서서히 원래 상태를 회복하게 됩니다. 소위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이성의 기능을 회복하여 상대방을 비로소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기까지의 기간이 길어도 3년이라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사랑의 지속성을 의심하는 이들, 사랑에 있어 무책임한 이들에게는 그럴싸한 핑계로 이용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물타기(neutralization 중화 : 죄의식의 무효화를 일컫는 사회심리학 용어)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사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던 드라마 속 인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연구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열정적 사랑의 시기가 지나면서 연인들 사이에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oxytocin)이 증가합니다. 이는 태아와 모태 사이에 작용하여 서로 애착을 형성하게 하는 호르몬입니다. 생면부지의 남녀가 하루아침에 깊은 애착 관계를 맺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타오르는 열정의 시간은 그저 사그라지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든든함을 느끼면서,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고 싶은 마음, 돌보고 싶다고 느끼는 마음, 정서적 친밀함과 신뢰감을 쌓는 데 필요한 시간인 것입니다.

 많은 이가 열정이 사라지면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열정은 사랑의 일면일 뿐, 본질적인 속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바오로 사도를 통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중략)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4-8 참조).

 짧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삶에 스며든 사랑의 설렘은 계절과 함께 흘러갈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기대도 가슴 뛰는 순간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신의를 지켜온 긴 시간의 두터운 울타리는 결코 스러지지 않는 든든한 산이 되어 사랑하는 두 사람을 영원히 지켜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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