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너그러움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간에 서 있습니다. 본당에서는 내년 사목계획 수립과 예산 편성을 위해서 본당 신부님과 상임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신자들에게 어떻게 호소하면 교무금을 증액시켜, 내년 사목계획을 원만하게 실행할 수 있을까?
사실, 사제로서 제일 다루기 어려운 주제 중의 하나가 재정 문제, 쉽게 말해서 ‘돈’ 문제일 것입니다. 교우들의 살림살이도 각박한데, 재정 문제로 무거운 짐을 지게 해드리는 것 같아 마냥 죄송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본당 운영을 위해서 해야만 하니, 마냥 미룰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회가 일부러 그렇게 배정해 놓은 것이 아닐 텐데도, 매년 이맘때 복음 말씀으로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읽고 묵상한다는 점입니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강론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본당 재정에 관하여 애달프게(?) 설명할 수 있는 명분을 찾게 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예전에 이러한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 선배 신부님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신자들 스스로 교무금 액수를 결정할 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칙을 도움말로 제시해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교무금을 너무 많이 책정하고 헌납해서 가정이 휘청거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가톨릭신자 가정 가운데 이러한 가정은 역사적으로 존재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첨부하라 하셨습니다!). 둘째는, 그래도 뭔가 빠져나갔을 때는 표시가 나야 하니, ‘아까움’이라는 감정이 들 정도의 액수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제안이셨습니다. 본당신부로 재직하는 동안 여러 번 활용해보았는데,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과부를 보시고,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렙톤은 그리스 동전으로서, 하루 품삯의 1/150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얼마 안 되는 액수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정말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교우가 정성을 보일 때 똑같은 평가를 내립니다.
물론, 부유하면서도 너그러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면서도 인색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진정한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데는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적극적이라고 증언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너그러움입니다. “풍족한 데에서 얼마”를 넘어설 때 가능한 너그러움,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까지 머뭇거리지 않을 때 가능한 너그러움 말입니다.
우리는 본당의 운영을 위해서 헌금을 할 때마다 자신을 비우는 가난한 사람들을 적지 않게 봅니다. 있는 사람들 역시 이 동일한 너그러움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기대 또한 적지 않습니다.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너그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데 방해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웃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서, 하느님의 너그러움을 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힘쓰는, 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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