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파괴
오늘 말씀을 담고 있는 루카의 본문은 다소 서툴게 엮인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며, 둘째 부분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제기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대하고 있으나, 예수님은 직접적인 답은 주시지 않고, 다만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식별하게 해주는 표징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성전의 파괴에 관한 몇 가지 점들을 묵상해보기로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왜 파괴되어야 했을까? 예수님은 왜 유다인들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자랑하던 성전 건물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하고 예언하신 것일까?
사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전 파괴에 대하여 두 차례에 걸쳐 설명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루카 19,44에서, 예수님은 이 사건을 당신이 하느님의 구원자 메시아이심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겪어야 했던 징벌로 적시하십니다(지난주 목요일 말씀 참조). 한편, 요한 2,19-22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설명은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한 2,19) 하는 다소 신비스러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성전 이외의 다른 곳에 머무시고 현현하실 때가 되었다고 가르치시는 듯합니다. 따라서, 유다인들이 지금까지 하느님의 거처로 간주해 왔던 성전은 사라져야 하고, 하느님은 이제 당신 아드님 안에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한 어조로 일깨워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참되고 새롭고 궁극적인 성전이라는 선언입니다. 부활의 날에 예루살렘 성전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채, 새로운 참된 성전에게 자리를 내주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 각자가 또는 교회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 전체가 하느님의 새로운 거처인 성전이 되리라는 설명으로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되풀이하고 보완합니다. 바오로의 이 사상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은, 누구의 마음이든, 하느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우선 찾아야 할 장소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찾지 못한다면, 하느님을 영원히 만나지 못할 위기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오늘 예수님은 성전 파괴 예고를 통해서, 파괴 그 자체를 뛰어넘는 새 가르침을 건네주십니다. 하느님은 결코 인간이 만들어놓은 공간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부활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자리하셔서, 당신의 뜻을 자유롭게 펼쳐나가시는 분임을 밝혀주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드려,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그 뜻 실현에 기도와 희생으로 함께 하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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