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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1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4-21 조회수 : 2510

삶은 결국 죽음에서 나옵니다!
 
 
청년 시절, 시골 본당 연령회장님을 따라 입관예절을 도와드리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신자들이 임종하면, 본당 연령회에서 염습이며 입관이며, 장례 절차 일체를 주관했습니다.
 
염습을 하기 위해 시신을 안치실에서 작업실로 옮겨 눕혔는데, 돌아가신 분이 대형 교통 사고를 당한 분이어서 그런지 몰골이 참혹했습니다.
눈뜨고 볼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연령회장님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묵묵히, 그리고 척척 염습을 해나가셨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참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는 그저 필요한 물건을 달라고 하면 집어드리고, 시신을 옮길때 들어드리고 그랬습니다.
 
아직 젊은 분이었고 타지에서 오신 관광객이었는데, 야간에 낯선 길을 운전하다가 참사를 당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회장님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염습하는 사이, 저는 개인적으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 목숨 참으로 별것 아니로구나, 숨 한번 끊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극정성으로 동반해드리는 일이 무척 힘겨운 일이지만, 참으로 중요한 일이로구나, 하는 생각.
 
어제에 이어 오늘 첫번째 독서인 사도행전은 스테파노의 순교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받은 혹독한 박해를 묘사하고 있는데, 참혹한 동시에 감동적입니다.
 
독실한 사람 몇이 돌에 맞아 순교한 스테파노 부제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젊은 나이에 무죄한 죽임을 당한 스테파노, 주님과 교회에 충실했던 스테파노의 시신을 수습하던 사람들의 슬픔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래서 장례 절차 내내 대성통곡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스테파노가 악한들로부터 맞은 돌의 크기는 공기놀이하는 정도의 잔돌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야구공 크기 정도, 아니면 큼지막한 사과 크기였습니다.
그들이 스테파노를 둘러싸서 던진 돌은 한두개가 아니라 수백개였습니다.
 
스테파노는 빗발처럼 날아오는 돌들을 피하지도 않고 고스란히 다 맞았습니다.
어떤 돌은 머리를 정통으로 가격했습니다.
어떤 돌은 얼굴에, 어떤 돌은 가슴에, 허리에 옆구리에...
온 몸은 상처투성이요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임종한 스테파노의 시신을 수습하던 사람들은 시신의 상태를 보고 크게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스테파노의 순교는 무지막지하고 거대한 악 앞에, 그저 체념하고 포기하는 약함의 표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승리의 표지였습니다.
 
스테파노의 의 순교는 성령에 대한 경외심과 하느님 현존에 대한 강한 믿음의 표현, 그 결과였습니다.
결국 참다운 순교는 십자가상 예수님 죽음의 가장 깊은 동기를 파악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스테파노의 순교 현장에 사울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유다 풍습에 따르면 최고의회 앞에 피고를 고발했던 증인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첫번째 돌을 던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스테파노에게 첫번째 돌을 던진 증인들이 벗어둔 겉옷은 사울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만틈 회심 이전의 사울은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는 데 최일선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행전 8장 3절)
 
따지고 보니 하느님 참 묘하십니다.
그토록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던 사울이었는데, 하느님께서는 박해자 사울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당신의 사도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눈이나 생각만으로 하느님의 크신 계획이나 섭리를 종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스테파노의 순교를 통해 우리는 교회에 대한 박해가 교회의 성장과 강화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가를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기 교회는 스테파노의 피와 죽음으로부터 역동적인 성장을 위한 힘과 생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스테파노의 순교는 그리스도교 교회사 안에서 의미있는 전진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딪게 했습니다.
삶은 결국 죽음에서 나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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