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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9-16 조회수 : 876

용서받았다는 믿음이 ‘봉헌’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실상은 용서받지 못한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 시몬의 집에 초대를 받습니다.
이때 죄인인 여인이 들어와서 예수님의 발을 눈물과 향유로 씻어드립니다. 
이때 시몬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예수님은 시몬이 당신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고 입도 맞추지 않았지만, 그 여인은 모든 것을 내어놓았다고 하시며 그 여인의 믿음이 그 많은 죄를 용서받게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바리사이 집에 들어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내려놓았음을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은 ‘내어놓음’, 곧 ‘사랑’의 정도와 ‘죄의 용서’를 직결시키는 것일까요?
당신께 용서를 받은 사람도 봉헌을 적게 하면서도 용서받은 것을 증명할 수는 없을까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용서란 다 내어주심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보영 목사는 심장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회개한 분입니다.
목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당연히 목사가 될 것으로 보였으나 박 목사는 다른 길을 갑니다.
어렸을 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목사인 자신의 아버지를 끌어내고 내어 쫓으려 하고 싸우는 모습들, 여자들이 계시를 받았다며 들어와 자기 어머니에게 음란마귀를 몰아내야 한다고 소리치는 모습들.
그리고 학교에서 자기 별명을 불렀다고 다리로 머리를 밟은 다음 “나는 쓰레기다.”라고 몇 번이고 복창하라고 한 선생님이 예배 때는 기도 인도자가 되어 대표로 기도하는 모습들.
이런 것들이 그를 하느님이 계심을 부정하게 만들고 혼자 힘으로 잘살아 보자는 결심을 하게 했습니다. 
 
반에서 꼴찌를 하던 그는 하느님이 없음을 확신하고 분노에 가득 차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고 좋은 집안의 아내를 얻습니다.
그 덕분인지 30년 전에 30억의 재산을 가진 병원 원장이 되었고 그의 삶은 타락 그 자체였습니다.
덕분에 아내는 박 목사를 떠나고 박 목사는 1년 이내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심장병에 걸립니다.
심박수가 어떤 때는 50 이하로 떨어지고 또 갑자기 300 이상으로 오르는 지옥의 고통을 느끼게 만드는 병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더는 손을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에 작은아버지에게 인사하러 인천방주교회에 갔을 때 한 절뚝거리는 여자가 걸어 내려오며
자신을 안다고 웃었습니다.
자기가 8년 전에 계시를 받았는데 목사 아들의 회개를 위해 매일 기도하라는 것이었고 오늘 그가 나타날 것이라는 소리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매일 기도하기 위해 8년 동안 명절임에도 시댁에도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박 목사에게 오늘 자정에 주님께서 교회 안에서 만나주시겠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박 목사는 어머니에게 찾아왔던 여인들을 생각하며 미친 사람이라 여기고 작은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잠을 청했는데 심장이 안 좋아 자신도 모르게 교회에 들어갔고 성탄 트리가 있었는데 그 앞에 앉았더니
심장이 제대로 뛰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자정이었고 박 목사는 “나는 너를 내 종으로 쓰겠다.”라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헛들었겠거니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심장이 안 좋아 그 성탄 트리 앞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주님은 차 사고 날 상황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 하시고 전화기를 들으면 이러저러한 내용을 들을 것이라고 하시고
그것도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박 목사는 그런 건 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고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심장이 뛰었다 안 뛰었다 하며 죽을 고통을 느껴 교회로 찾아가 트리 앞에 앉았습니다.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황장애 증상이 와서 숨도 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여인이 나타나 그의 가슴을 열고 수술을 해주는 것처럼 하더니 검은 옷을 입히고 십자가를 목에 걸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교회를 나와 산을 뛰어올랐습니다. 
산꼭대기까지 뛰는데 숨은 찼지만, 심장은 멀쩡했습니다.
떼굴떼굴 구르면서도 너무 기분 좋은 상태로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도중 마음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너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는데 넌 믿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네가 의사로서 믿는 것으로 너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네 심장을 고쳐주었다. 
이젠 믿겠느냐?”
 
모든 것은 우연일 수 있어도 의사로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믿게 된 그는 결국 하느님께 용서를 빌며 밤새 산에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내려와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20만 원만 들고 바로 신학교에 등록하였습니다.
그때 나이가 39세였습니다. 
왜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을까요? 그것이 있었다면 목사가 되어서 바로 교회를 짓고
개척교회 목사로서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받으면 내어놓고 싶은 것이 인간 양심입니다.
따라서 용서받았다는 표징은 내어놓는 것으로밖에 증명될 수 없습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다 내어주심이고 그 용서를 믿는 증거는 그 은혜 때문에 나온 나의 내어놓음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죄는 왜 시작되었을까요? ‘주님은 나에게 준 게 없어!’ 이런 불만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도 봉헌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용서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가죽옷은 당신 아들의 목숨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죄를 위해 당신 아드님을 대신 죽이셨습니다. 
용서는 곧 내어줌인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를 받았다는 것은 다 받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저도 주님께 무언가 드린다고 생각할 때,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가 다 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성체를 주실 때마다 이미 저를 용서하고 계신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아도 부족합니다.’
 
받았으면 주어야 한다는 법칙이 우리 양심에 쓰여 있습니다.
용서는 받는 것이기에 용서받은 사람은 자동으로 내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소득의 10분의 1도 내어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용서받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받지 못해 불만인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닐까요?
 
용서받았다는 믿음이 봉헌으로 표현되지 못하면 아직 용서받지 못한 것입니다. 
바리사이 시몬은 용서받은 것일까요?
당연히 모든 것을 용서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집에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용서받았다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들어오셨어도 아무것도 내어주지 못하여 결국 용서받지 못한 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용서받았다고 믿고 당연히 나의 것을 다 내어드릴 때 그때 비로소 용서받는 것입니다.
용서라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모든 것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받았으면 감사하게 나의 것도 내어드려야 하고 그 내어드림이 있을 때 용서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임으로
용서가 확정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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