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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교구장

초대교구장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

1963년 ~ 1973년

약력
  • 1924.11 평남 진남포 출생
  • 1946.03 함남 덕원신학교 철학과 수료
  • 1949.05 덕원신학교 신학교 수료
  • 1950.03.20 서울 성신대학 본과 졸업, 사제 수품
  • 1950.04 서울 명동 주교좌본당 보좌신부
  • 1951.01 부산 U.N. 포로수용소 군종신부
  • 1954.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 1952.06 부산 가톨릭 도서관 부관장
  • 1954.10 서울 성신 중ㆍ고등학교 교사
  • 1956.09 이태리 유학
  • 1957.06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석사
  • 1960.04.02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 신학박사
  • 1960.05.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 1963.10.07 수원교구장 임명
  • 1963.10.20 주교 수품
  • 1963.12.21 수원교구 초대 교구장 착좌
  • 1973.10.25 광주대교구장 임명. 대주교 승품
  • 1973.11.29 광주대교구장 착좌
  • 1975.03 주교회의 의장
  • 2000.11.30 광주대교구장 사임
윤공희 빅토리노 주교
그리스도의 평화
그리스도의 평화
Pax Christi
주요 업적

당시 수원교구는 농촌이 대부분이고 방인 사제로만 구성되어 있어 외부의 지원이 없고 경제적 자립도 약했던 지역이었다. 초대 교구장은 자립을 위한 신자 재교육에 주력하여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전국 ‘평신도 교육 3개년 계획’을 통해 교구 공동체의 쇄신과 부흥을 이끌었다. 또한 신학생의 양성과 후원을 위해 ‘우슬라회’를 창설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교구장과 사제들의 일치속에서 신자들의 신앙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주교와 사제단이 일치 안에서
신자재교육을 통해 신앙의 기초를 다진 시기”
  • 교황 바오로 6세, 1963년 윤공희(빅토리노) 주교를 수원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
  • 당시 1개시 10개 군 신자 42,548명(3.2%), 본당 24개, 공소 205개, 사제 28명, 대신학생 26명, 수도자 44명으로 농촌 중심의 경제적 자립도가 낮은 상태로 출발
  • 자립을 위한 신자의식 계발에 주력 및 신자 신앙교육을 통한 교구 성장을 꾀함
  • 교구청사 신축(화서동 100번지 437평)과 성소 계발(신학생 후원단체 우술회 발족)에 주력
  • 수도회의 활발한 진출을 통해 본당사목과 의료사업에 큰 발전
  •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1969년) 결성 및 평신도교육 3개년 계획(1972~1974년) 통한 교구 공동체 쇄신 및 부흥운동
  • 1972년 7월 교구청 행정기구 개편(사목부 신설 등) 및 1973년 교구 내 각 본당 사목협의회 구성
  • 교구 내 가톨릭 농촌사회지도자 교육원을 설립(1974년, 수원교구 교육원, 현 안양대리구청)
  • 1973년 11월 7일 광주대교구로 전임, 대주교 승품 및 광주대교구 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