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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성지 신부님 글

양근성지에서 온 편지8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01 조회수 : 35

+ 깨달음이 그대와 함께.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에게 8월 인사 올립니다. 푹푹 찌는 여름, 높은 습도로 불쾌지수가 굉장히 높은 요즈음입니다. 아무쪼록 몸과 마음 관리 잘 하시어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모든 것은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과 습도를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온몸으로 환영하며 일부러 땀도 흘리고, 여름은 더워야 제격이지 하는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우리의 기분이 불쾌하지 않고, 몸도 덜 지치리라 생각합니다. 올바른 생각은 우리의 기분과 몸을 다르게 만들므로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특히나 자동적 사고와 함께 특정한 사건에 반응하는 핵심적 신념을 잘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저의 핵심 신념은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늘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평상심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핵심 신념은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도 혹은 빈곤하게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중요한 책 두 권이 있습니다. 그 중 한권은 구약 성경입니다. 유대교의 성경인 구약 성경을 통해 신약성경이 나오고, 구약 성경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뿌리가 됩니다.

지구상에서 중요한 두 번째 책은 바로 인도의 베다 경전입니다. 베다를 통해 우파니샤드 경전과 요가의 사상이 나오고, 베다는 힌두교와 불교 더 나아가 자이나교의 뿌리가 됩니다.

서양의 구약 성경과 동양의 베다는 서로 다르면서 유사한 점 또한 많습니다. 구약 성경은 우리가 잘 알기에 설명을 생략합니다. ‘베다경전의 베다는 지혜, 지식, 앎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즉, 범어입니다. 우파니샤드와 요가 또한 범어로 우파니샤드는 가까이 아래 앉다는 의미이고, 요가는 본래 말을 통제하다는 뜻이었는데 후에 결합하다. 합일하다란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양의 종교를 헌신과 예배의 종교라면, 동양의 종교는 헌신과 예배의 측면도 있지만 깨달음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신약성경 특히 ‘4 복음서에 보면 심심치 않게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파니 샤드, 요가를 합성해서 풀이하면 스승의 발치에 앉아 배우고 우주, 또는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루카 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보고 투정을 부리는 마르타에게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동양적으로 표현하면 우파니샤드, 요가 가 되는 것입니다. 스승의 발치 아래에 머물며 배우고,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듯,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듯, 조용히 앉아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멈추고, 눈을 감고, 조용히 앉을 때 내면세계가 보이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처럼 멈추고,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각자의 내면세계를 보고, 하느님의 소리를 들었으면 합니다.

한편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영산회상(영산회의)에서 연꽃을 들어 보이자 팔만대중 중에 부처님의 제자인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염화미소라는 말이 나옵니다. 염화미소의 의미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이심전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에게 마하가섭이 있다면 예수님에게는 베드로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마하가섭처럼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순수한 베드로의 마음 위에 교회를 세우고, 그에게 하느님 나라의 열쇠를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해한 예수님은 먹고 마시고 춤추는 참 인간,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하느님적인 것임을 예수님을 통해 깨달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불자들 중에는 예수님을 깨달은 분이라고 표현하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특히나 성경에서 깨어 있으란 말은 깨달으라는 의미이고, 빌라도가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묵묵부답하신 것은 진리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기 전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베드로는 예수님 질문의 의도를 모른 체 그저 사랑한다고만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양들을 돌보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깨달음의 관점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너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은 생각과 에고로부터 자유로워 졌느냐?’ 라는 물음인데 베드로는 영문도 모르는 체 그저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이며, 공입니다. 생각과 에고가 사라질 때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해와 비를 내려 주시는 하느님의 무한 사랑을 알고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양들은 베드로의 내면세계에 살고 있는 좋은 양, 나쁜 양, 이상한 양, 등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한마디로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좀 더 수행 정진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망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다가 부처님 사후 깨달음을 얻었듯이, 우리의 베드로도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신 후 전도 여행을 하면서 죽은 이를 살리고 병자를 고치는(사도행전 932-43) 것을 보면 분명 깨달았다고 불자들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는 멈추고, 눈감고, 조용히 앉아 내면세계에서 오고 가는 생각과 수많은 양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과 하나 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정 사랑만이 하느님과 우리를 하나로 연결 시키고, 예수님 안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는 이정표인 것 입니다.

 

20228월 사랑의 깨달음 가득한 삶 되시길 바라며.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