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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성지 신부님 글

양근 성지에서 온 편지 1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01 조회수 : 122

+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순교자 광장에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아침기도를 하고, 간단히 밥을 먹고 열심히 눈을 치웠습니다. 한 두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그리고 성지 뒷마당에 조성된 명상의 길을 걸으며 2024년 새해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에게 평화 가득하기를 하느님께 기도 봉헌했습니다. 

  새롭게 조성된 명상의 숲에 앉아 있으면 참 포근합니다. 그리고 명상의 숲 입구에 프란치스코 상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명한 ‘평화의 기도’와 ‘태양의 찬가’를 돌에 새겨 놓으면 명상의 숲을 거니는 사람들에게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문뜩 떠오릅니다. 


                       평화의 기도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오 주님, 제가 위로를 받기보다 위로하게 하시고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게 하소서

저를 내어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받고

제가 죽을 때에 다시 살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태양의 찬가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워라 나 외롭지 않고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 있음을

오 아름다워라 저 하늘의 별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은

오 아름다워라 어머니신 땅과 과일과 꽃들 바람과 불

갖가지 생명 적시는 물결 이 모든 신비가 주 찬미 찬미로

사랑의 내 주님을 노래 부른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와 ‘태양의 찬가’는 저를 한없이 작아지게 하고, 한없이 겸손하게 합니다. 나도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평화를 노래하고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데 지금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헤르메스 마법에서 외우는 주문이 있습니다.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안에서와같이 밖에서도’ 입니다. 헤르메스 마법의 주문을 보면 주님의 기도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소서’라는 기도문이 떠오릅니다. 우연일까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안에서와같이 밖에서도’의 주문은 우리 내면의 상태가 현실로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하늘과 안은 모든 인간의 내면세계 곧, 무의식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잘살고, 어떤 사람은 못살고, 어떤 사람은 기쁘고, 어떤 사람은 슬픕니다. 이유는 하늘과 안에 부와 기쁨이 있는 사람은 잘살고 기쁘고, 하늘과 안에 가난과 슬픔이 있는 사람은 가난하고 슬프게 산다는 우주의 원리인 것입니다. 

  칼 융은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내면의 그림자 즉 변태적 성향이 있다.’ 변태의 국어 사전적 의미는 첫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본래의 것과 아주 달라져 그 상태로 독립된 종으로 고정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융의 그림자 즉 변태적 성향은 인간 무의식 안에 있는 폭력적이고, 부정적이고, 성적이고, 우울하고, 분노하는 뒤틀린 성향 및 사고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인간 무의식 안에 변태적 성향이 의식화되지 않으면 우리의 현실은 무의식의 변태적 성향에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의 그림자 즉 변태적 성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의 무의식 안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희미한 빛이 그 어두움을 이겨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림자 즉 변태적 성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내면의 그림자를 억압하고, 내쫓으려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끌어안는 것입니다. 그런데 편지에서 제가 말하는 그림자 즉 변태적 성향은 정상인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적인 정신증은 결코 아님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림자 즉 변태적 성향을 받아들이고 끌어안으면, 신비하게도 변태적 성향은 사라지고 그 안에 한없는 평화와 여유가 자리 잡게 되고, 우리의 현실은 무한 긍정과 사랑의 빛으로 빛나게 됩니다. 꼭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안에서와같이 밖에서도’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도 성경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나쁜 것이 없고 입으로 나오는 것, 즉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등의 변태적 성향이 나온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시고 구세주로 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역할이 있었습니다. 그중 요셉과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고자 합니다. 요셉 성인은 예수님의 양부로 갖은 고생을 하며 예수님을 키우고 지키셨습니다. 특히나 헤로데를 피해 이집트에 살 때 요셉은 저의 생각입니다만, 동방박사들에게 선물로 받은 황금, 유향, 몰약을 팔아 생활비로 잘 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엘리아 예언자처럼 광야에서 살며 금욕적으로 살고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와 회개의 설교를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따랐고,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후에는 대중들 앞에서 조용히 사라집니다. 

  2024년 새해를 시작하며 예수님의 오심과 구원 사업을 준비하신 요셉 성인과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도 나에게 맡겨진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는 말합니다. ‘세상은 무대이고, 우리의 삶은 하나의 배역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삶의 주인공은 오직 나뿐이고, 모든 사람은 그저 ‘엑스트라’일뿐입니다. 그러니 내 삶의 배역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언제든 바꾸어도 됩니다. 하지만 내 배역이 하늘에서 온 것이라면 천직이라 생각하고 충실하게 연기해야 할 것 입니다.    


2023년 1월 안도 없고 밖도 없는 하느님과 함께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