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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성지 신부님 글

양근성지에서 온 편지 9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9-01 조회수 : 133

+ 명분이 다가 아닙니다. 


  9월입니다. 아직도 더위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번 한 달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시길 기도합니다. 

흔히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에 명분이라는 단어를 치면 명분이란 신분이나 이름에 걸맞게 지켜야 할 도리로 나와 있습니다. 

   한 인간이 온전한 전체 안에 산다는 것은 명분을 보되 명분 밖의 것도 함께 보라는 뜻입니다. 언어를 이해한다면 언어 밖의 것도 함께 깨달아야 합니다. 한 가지 명분이 전부인 것 같고 또 인간만 있는 것 같겠지만, 사실 명분 외에, 언어 외에, 인간 외에도 무한 많은 존재가 있습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그 밖에 있는 무한한 존재를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명분 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직위가 우리의 삶 전체를 옭아맵니다. 교수가 되어 교수의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 자신이 교수라 생각합니다. 교수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라는 것을 잊은 채 말입니다. 아내가 되어 아내로서 살아가다 보면 자신을 아내로 생각합니다. 아내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고 한 여자이며, 아내는 그다음의 역할을 잊어버립니다.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고 대통령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중국의 고승 태허 대사는 “한 인간이 되기만 하면 성불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우리의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스승, 아버지, 선생님보다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나는 인간이 아니란 말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즈음 많은 이들이 사람의 말을 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하지 않으며 동물이나 괴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문명사회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신분을 얻고 살아갑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이런저런 이름이생기고 그 이름이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나타냅니다. 학생, 일꾼, 장사꾼, 사장 등등. 또 사람을 부를 때 성씨 뒤에 직함을 붙여서 호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이름들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사장이었지만 내일은 거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한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명칭은 그저 우리 인생의 작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인생 전체는 한두 가지 이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풍부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변하고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저 나는 나입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 속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묻자 하느님은 ‘나는 있는 자 그 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신분 자체는 대단한 것이 아니며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우리가 그 신분과 이름에 꽁꽁 묶여 자유로운 인생을 고리타분한 명분 속에 가두고 에너지와 개성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명분이든 그저 환상일 뿐입니다. 형형색색의 명분을 꿰뚫고 늘 한결같은 자기만의 자성(나는 인간입니다)을 발견해야 합니다. 

  남들은 우리에게 꼬리표를 붙여 이런저런 울타리에 가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신경 쓸건 하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자신에게 꼬리표를 붙여 어떤 울타리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명분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비교는 절대 금물입니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늘어나는 것은 좋아하고, 줄어드는 것을 싫어합니다. 돈이 많아지고 직위가 올라가고 명예가 높아지면 기뻐하고 반대가 되면 슬퍼합니다. 

  그런데 노자는 “어떤 사물이든 때로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늘어나는 것이고, 때로는 늘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줄어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화는 복에 기대어 있고 복은 화 속에 숨어 있다.”고 한 노자의 말은 유명합니다. 재앙 속에 행복의 씨앗이 숨어 있고 행복 속에서 재앙의 싹이 움트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화가 반드시 화인 것도 아니고, 눈앞의 복이 반드시 복인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몸을 낮추는 것을 싫어하지만, 몸을 낮춘 덕분에 재앙을 피 하기도 합니다. 또 적게 가지면 많이 얻고, 욕심을 내면 오히려 잃을 수 있습니다. 서로 대립 되는 개념들이 사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쉽게 뒤집히는 것입니다.

  불교 화엄경에 보면 사람이 수행하고 깨닫는 것은 천천히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존재는 바다와 같은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느 한쪽을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광활한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좁고 음침한 도랑에서 살지 말고 끝없이 넓은 바다에서 사십시오. 성공이든 행복이든 인생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들을 추구할 수 있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온전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행복에 대한 어리석은 망상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성공만을 받아들이고 실패를 버리라고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상황을 온전한 인생으로 받아들이고 누려야 합니다. 맑은 날에는 햇빛을 누리고, 비 오는 날에는 비바람을 누린다면 불행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깊은 바다에서 유영하며 살기 위해 모든 비교, 높고 낮음, 행과 불행, 크고 작음, 환하고 어두움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워 져야 할 것입니다.


2024년 9월 명분과 비교로부터의 해탈을 바라며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