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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성지 신부님 글

양근 성지에서 온 편지 5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5-01 조회수 : 15

+ 시간과 권력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에게 5월 인사 올립니다. 성모님의 달 5월 보내시면서 성모님의 인내를 배웠으면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예수님의 탄생, 활동,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을 인내로써 지켜보시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신 분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시간의 지평들을 자기중심적으로 엮음으로써 시간의 다발을 만듭니다. 역사는 일정한 방향을 지닌 시간으로써 시간의 붕괴를, 즉 시간이 점(point)적인 현재의 연속으로 흩어져 버리는 것을 막아 줍니다. 이때 방향을 정해 주는 것은 ‘자기’입니다. 고유한 역사성의 정수인 ‘자기의 항구성’은 사라지지 않는 지속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결코 흘러가 버리지 않습니다. 고유하게 존재하는 자는 말하자면 늘 시간이 있습니다. 그가 항상 시간이 있는 것은 시간이 곧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고유하게 존재하지 못하는 자가 항상 시간을 잃어버리고 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결단코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고 언제나 시간이 있다는 것은 시간적인 면에서 고유한 실존이 지니는 탁월한 특성입니다. 빠듯한 시간은 고유하지 못한 실존의 증상입니다. 고유하지 못한 실존 속의 현존재는 자기 자신을 세계에 빼앗기는 까닭에 시간을 잃어버립니다. 단호하지 못한 자는 염려의 대상에게 분주하게 매달리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염려의 대상으로 인해 자기 시간을 잃어버립니다. 따라서 그런 이들은 입버릇처럼 ‘나는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의 시간 전략은 결국 ‘나는 시간이 없어’를 ‘나는 늘 시간이 있어’로 전환 시키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지속성의 전략이며, 자기의 실존적 동원을 통해 시간에 대한 잃어버린 주권을 다시 확립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말이 어려운가요? 차분히 읽어 보면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이데거의 시간은 고유한 자의 편이며, 분주한 자는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마음을 굶기는 기도와 금욕, 그리고 약간의 노동이 필요할 것입니다. 

  인간의 권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가장 직접적 형태의 권력은 자유의 부정으로 나타납니다. 이때 권력자는 심지어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권력에 예속된 자의 의지에 반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항을 분쇄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것만이 권력은 아닙니다. 권력이 반드시 강제의 형식을 취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폭력에 의존하는 권력은 최고의 권력이 아닙니다. 제압해야 할 반대 의지가 형성되어 권력자와 충돌한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의 취약성을 증명합니다. 권력 자체가 아예 화재조차 되지 않는 때야말로 권력은 어떤 의심도 받지 않는 채 유지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권력은 크면 클수록 더 조용히 작동합니다. 그런 권력은 떠들썩하게 자기 과시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용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마트 권력입니다. 

  친절한 스마트 권력은 안 된다고 말하기보다 그러라고 말하는 권력이며, 억압적이기보다 유혹적인 권력입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키고 그것을 착취하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금지하는 대신 유혹 합니다. 그것은 주체와 대적하는 대신 주체의 욕구에 부응합니다. 

  스마트 권력은 심리를 훈육하거나 강제와 금지의 굴레에 묶어두지 않고, 오히려 심리에 착 감겨 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털어놓으라고, 함께 나누라고, 참여하라고, 우리의 의견, 욕망, 소원, 선호를 전달하고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라고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이처럼 친절한 권력은 억압적 권력보다 더 막강합니다. 오늘날 자유의 위기는 자유를 부정하고 억압하기보다 자유를 착취하는 권력을 상대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됩니다.

  자유분방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자극하고 유혹하는 스마트 권력은 명령하고 위협하고 규제하는 권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좋아요! 버튼은 스마트 권력의 인장입니다. 사람들은 소비하고 소통하면서 즉,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서 스스로를 지배 관계 속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스마트 권력은 우리의 의식적, 무의식적 사고를 읽고 분석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최적화하도록 유도합니다. 따라서 권력이 제압해야 할 저항 자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지배는 큰 힘을 소모할 필요도 없고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한마디로 스마트 권력은 호감을 사고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지배하려고 합니다. 

  양근성지 후원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스마트 폰은 안녕하십니까? 지나친 스마트 폰 사용은 우리를 신자유주의 혹은 자본주의의 권력에 의지하고 예속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자기 주권이 없는 노예, 혹은 죄인과 종으로 전락시킵니다. 자본주의 안에서의 죄와 노예는 지나친 채무인 것입니다. 빚을 지고 산다는 것은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지 못하는 가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처럼 자기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시간의 주인으로서 타인과 시간을 충분히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나친 스마트 폰 사용을 중지함으로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거나 의존하지 않는 참 자유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2025년 5월 인내로서 영생을 얻은 성모님과 함께.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