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용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입니다.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 더위 드시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한 한 달 되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불교의 창시자인 싯다르타 부처님은 30세에 출가하여 7년간의 긴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후 첫 번째 가르침이 바로 욕망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불행이 욕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우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 부처님께서는 녹야원에 가시어 함께 수행 전진 한 도반들에게 사성제를 설법하십니다. 고(苦)·집(集)·멸(滅)·도(道)를 의미합니다. 쉬운 말로 풀어서 말하자면 세상은 ‘고통’이다. 이 세상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다. 집착을 없애는 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중용이라는 것입니다.
중용이란 서양 철학사 안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로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본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정치의 진영 논리처럼 좌익은 왼쪽만을 보고 우익은 오른쪽만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팩트와 진실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와 종교가 진영 논리에 갇혀 올바른 진실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중심을 잡고 중용의 마음으로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말씀하십니다. 회개란 생각을 바꾸어 다르게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중립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가시어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설하시며 당신의 출사표를 던지십니다. 그런 후 당신의 생각과 뜻을 같이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중 시몬 베드로를 부르시는 모습이 꽤 인상적입니다. “예수님께서 겐나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 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그 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썻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루카5,1-7)
그렇습니다. 시몬은 고기 잡는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인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자신이 최고의 어부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동안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시몬은 엄청난 물고기를 얻게 됩니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의 도를 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용의 도는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진리와 사실만을 보고자 하는 철학자의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오늘날 대한민국과 교회가 발전하기 위해 중용의 도가 절실히 요청된다고 봅니다.
얼마 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니체의 진정한 삶에 대한 책을 보았습니다. ‘니체’ 하면 반 그리스도교적이고 반 교회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그의 책들을 보면 그는 참 인간이고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1800년대 가톨릭교회에 갇혀서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강요하고 통제하고, 감시하는 종교의 신에 대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었고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자기의 사상을 말한 사람이 아닌 참으로 중용의 도를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유전적 질병인 뇌의 이상과 몸과 눈의 질병으로 심한 통증과 시력 상실이라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진리를 위한 책을 처절하게 쓴 인물입니다. 그에게 있어 힘이니, 권력이니, 의지니, 초인이니 하는 개념은 결코 정치적인 신념이 아니라 나약하고 힘든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극복하는 원동력이자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니체의 삶을 보면서 저도 깨달은 바가 많이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사제의 삶을 예수님처럼 의연하게 살고 성모님처럼 인내로써 영원한 생명을 사는 삶으로 변화 시켜야 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때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 예수님, 베드로, 니체의 삶을 통해 참된 진리와 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되시길 바랍니다.
2025년 7월 중용의 도와 함께.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