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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부로 요당리 성지에 새로 부임한 김대우 모세 신부입니다.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7-01 조회수 : 14

6월 17일부로 요당리 성지에 새로 부임한 김대우 모세 신부입니다.

요당리 성지 후원회원과 봉사자들께 이렇게 글로 인사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 천주교 순교자, 성인을 모시는 거룩한 땅에서 사목생활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과 주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거룩한 땅에서 숨쉬고 기도하며, 순례자를 맞을 수 있음이 사제에게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또한 막연히 이름만 들었던 장주기 요셉 성인을 삶의 발자국을 밟으며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을 공부하고 전할 수 있는 기회도 저에게는 큰 선물입니다. 

교통사고와 후유증으로 삶의 질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2023년 겨울, ‘다시 사목현장에 나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우울감으로 본당을 떠났습니다. 이후 암담한 시간을 보내며 1년 6개월 동안 교회직무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지냈습니다. 몇 달 동안 희망 없이 지내다, 걷고 또 걸으면서 재활운동과 식습관을 개선하며 운동에 매진했습니다. 또한 무엇을 이루겠다는 욕심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을 비우고 나니, 저의 몸은 점점 기력을 회복해 갔습니다. 그리고 ‘심장 뛰는 일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좋아하는 외국의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유서 깊은 성당과 성지에도 방문하였습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상의 비오 성인이 머무신 이탈리아 산조반니 로똔도(San Givanni Rotondo)에서 삶의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오상의 비오 성인과 성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님, 세분의 초상화를 한 폭에 담은 대형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역경과 병고속에서도 미소를 머금고 계셨고 평화로운 표정이었습니다. 삶이 기쁨이고 평화였습니다. 저는 “대우야, 행복하자!”, “대우야 웃자”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상처입은 치유자”, “기쁨을 주는 사제”, 제가 다짐한 삶의 방향들이 이곳 요당리 성지에서 펼쳐질 것이라 믿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에 위치한 요당리 성지는 전국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성지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한국천주교 순교자들의 교우촌이고 천주교 신앙을 증거한 신앙의 요람이었던 유서 깊은 성지입니다.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에 순교하신 분들의 얼과 숨결이 이곳 요당리 성지(옛명:수원 느지지)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 성지는 장주기 요셉 성인과, 장 토마스 복자, 지 다태오 하느님의 종 증거자의 출생지이고 자란 신앙의 요람입니다. 아울러 3년간 머물던 엥베르범 주교님, 이곳 교우촌에서 교회재정 관리와 평신도 회장직을 수행한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과 정화경 안드레아 성인을 모시며 저와 봉사자들은 순례자들에게 그 신앙의 유산을 전하고 있습니다.

푸르고 너른 성지의 전경안에서 단풍나무로 드리워진 아늑한 <십자가 길>과 <로사리오 길>을 따라 산책하면 천상의 길을 걷는듯 영혼이 상쾌하고 가볍습니다. 잔디밭 중앙으로 난 길을 따라 성인들 묘소가 보이는 야외 제대 앞에 서면 세상살이에 지치고 답답한 마음이 뻥하고 뚫리며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눈을 감아봅니다. 바람이 머리 결을 스치고 이내 저를 휘감아 200년 전, 어느 날로 데려갑니다. 그렇게 저는 옛 교우촌에 와 있습니다. 전국에서 박해를 피해온 피난민들과 서울과 경기도에서 내려온 교우들이 만나, 환난과 역경을 이겨낸 서로를 격려합니다.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음식을 나누고 웃고 기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디서도 꺼내지 못했던 로사리오를 손에 들고 기도합니다. 그 어디에서도 부르지 못했던 성가를 부르고 성호경을 긋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하기 힘들던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합니다. 그날은 새롭게 태어난 아기의 세례식도 있고 평생 노비로 살다 온 사람의 첫 영성체, 대감 마님이었던 분의 고해성사도 있었던 날입니다. 어린이들이 나비를 잡으러 풀밭 위를 뛰놀고, 아낙네들은 국수를 삶고 아재들은 돼지를 잡는 날입니다. 모두가 웃고 기뻐하며, 음식을 나누고, 삶의 애환을 나누고 격려하는 곳, 하느님 사랑이 첫째요 이웃사랑이 그 다음이라, 만 번 죽어도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으며 천 번 살아도 내가 먼저 너를 사랑하리라. 바로 그곳, 요당리 성지입니다. 하느님 나라입니다. 이곳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