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멋대로 살게 하소서!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에게 11월 인사 올립니다. 11월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분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달입니다. 오늘 기도 중에 양근 성지와 인연이 있는 모든 영혼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천국의 영광을 누리도록 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의 부모님과 친구 안토니오의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죽음이란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현실은 불평등하더라도 죽음이라는 것은 지극히 평등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빈자건, 부자건 잘났건 못났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죽는 순간까지 자기의 삶을 충실히 살아 죽음 앞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매스컴이나 유트브에 무당님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조상신이니, 지박령이니 하는 말들을 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오컬트(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를 주제로 악령이니 귀신이니 하는 말들을 하고 귀신과 악령을 쫓는 구마 사제나 구마 수녀에 대해 왕왕 이야기합니다.
정말 악령과 귀신은 있을까요? 정답은 ‘있다’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사순시기 필독서로 ‘악마는 존재한다’라는 책을 소개하고, ‘사탄에 대한 100가지 질문’이라는 책을 통해 사탄, 귀신들, 영적 전쟁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러나 제가 접근하는 사탄이니 귀신이니 하는 존재는 세간에서 떠드는 것과는 다릅니다. 먼저 제가 믿는 사탄이니, 악령이니 하는 것은 자기 생각이 만드는 ‘사념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부정적인 생각이나 믿음이 사탄을 만들고 악령을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지독한 우울과 불안, 그리고 공황중에 있을때 귀신이 보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귀신은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고 내 생각이 만드는 괴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사탄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사랑과 평화와 용서, 그리고 자유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므로 권위를 가지고 사탄을 물리치는 예수님을 보면서 사탄이나 악령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불우한 처지에서 힘과 권력을 탐하는 이들에게 자주 밀려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생각과 바른 믿음 안에 살면 결코 사탄이니 악령이니 하는 것들이 접근하지 않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요즈음 조리돌림이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조리돌림이란 한마디로 죄인이라 믿는 이들 혹은, 진짜 죄인에게 죄명을 달고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사람들로부터 욕먹고 모욕당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천주교 박해 시 순교자들이 목에 ‘사학죄인’(사학죄인이란 예전에 그릇된 가르침을 좇는 죄인이란 뜻으로 천주교 신자를 이르던 말) 팻말을 달고 이리저리 끌려다닌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단체와 조직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리적 혹은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대중과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왕따를 시키고 비아냥거립니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책임과 판단’을 통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고 대중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진정한 개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소신, 혹은 기준이 아니라 대중이 하는 대로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곳, 타는 것을 자기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에 맞추다 보니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우스 푸어, 카 푸어...
이렇듯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마음의 평화는 멀어져 갑니다. 내면적 평화는 남들이 주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기준에 맞추어 사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가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요한 14,23-27)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버지의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말씀은 각자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내면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고, 하나인 나 자신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큰 축복이자 선물입니다.
하오니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기준으로 살 때 온전한 개인이 되고 마음의 평화는 덤으로 따라오는 큰 축복입니다.
2025년 11월 복된 날 되시길 아멘 합니다.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