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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성지 신부님 글

즉자(卽自)와 대자(對自)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2-01 조회수 : 7

+ 즉자(卽自)와 대자(對自) 


  양근 성지를 사랑하는 후원회 가족 모두에게 2월 인사 올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아멘 합니다. 지금 창밖에는 다소 많은 눈이 내립니다. 내일 눈 치울 것을 생각하면 걱정되지만 그래도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동심으로 돌아가 좋은 마음입니다. 

  눈 내리는 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양근성지 후원 가족을 생각하면서 이번 달에는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의 책 ‘존재와 무’에 나오는 즉자와 대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샤르트르가 말하는 ‘즉자’는 변하지 않는 단순한 존재이며, ‘대자’는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즉자는, 어떤 가능성도 품지 않고, 본질이 고정되어 있으며, 시간성을 갖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보여지는 존재’입니다. 이와 달리 대자는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존재’이며, ‘자신의 존재를 결정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즉자 와는 달리 시간성을 갖습니다. 즉 대자인 인간은,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현재 속에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자인 인간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인간 의식인 것입니다. 

  어려운가요? 쉽게 생각하지요. 즉자는 ‘보여지는 나’이고 대자는 ‘보는 나’인 것입니다. 

  제 인생을 보면, 신학교 가기 전에는 부모님이 나를 지켜보며 관리하고 통제 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교수 신부님이 지켜보았고, 신부가 되어서는 주교님과 선, 후배 신부님들이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먹고 말하고 행동할 때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고 심한, 경우에는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기만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기만이란 자신이 대자인 것을 부정하고, 즉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입니다. 즉 인간이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변명하는 상태입니다. 

  샤르트르는 자기기만을 극복하고 자신의 자유를 인정하고,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창조해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임을 자각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는 저도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로써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짐해 봅니다. 저는 즉자가 아니라 대자로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존재로 살 것입니다. 또한 저는 자유롭도록 강요 받았기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은 저를 즉자로 만들 위험이 있으며, 이는 저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음을 명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기만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살겠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납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나병환자들은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사람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냉대를 받았으며 특히 사제들의 관리와 감시, 그리고 통제의 대상이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의 삶은 샤르트르가 말하는 대로 자유를 빼앗긴 즉자들의 삶인 것이었습니다. 자유를 잃은 인간은 죽은 시체일 뿐입니다. 

  나병이 나은 사마리아인은 사제들에게 가지 않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병이 나은 사마리아인은 그동안 자신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사제에게 가지 않은 것은 예수님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이제 보여지는 즉자가 아니라 자유롭게 보고 행동하는 대자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자유로우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대자의, 원조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있으니 더 이상 보여지는 자로서 감시받고 통제받는 삶이 아닌 보는 자로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대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026년 2월 자유를 꿈꾸며 

양근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