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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성지 신부님 글

신앙의 용기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7-01 조회수 : 342



  복음서 안에는 치유의 사건을 전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여정을 이루심에 있어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악령을 쫓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인간을 찾아오신 하느님으로서의 계시를 잘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신성(神性)을 드러내시는 이러한 생명의 하느님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물론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역시 놀라움을 전해주지요. 더 나아가 인간의 한계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시는 분으로서가 아닌 직접 개입하시는 하느님, 당신의 신적 능력으로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더없이 필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저 놀라움에서 그치지 않고 나의 현실 안으로 치유하시는 하느님을 맞아들입니다.


  성지에 오시는 교우분들 가운데 미사 후 안수를 부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대부분 육신의 아픔을 안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간단히 당신의 아픔을 저에게 말씀하시고 손을 얹어 기도해주기를 청하시는데요, 그 눈빛이 아주 간절해 보이는 분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또 지속되어 왔던 아픔이 무거워 지쳐버린 안색을 보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럴 때에는 저 자신도 같이 마음이 무거워지지요. 저마다 크고 작은 육신의 아픔을 안고 있다면 거기에서 벗어나기를 대충(?)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낫게 해주시기를 청하는 기도는 늘 간절할 것입니다. 저에게 기도를 청하는 분들도 당연히 저에게가 아니라 하느님께 그 간절함을 바치시는 것이지요. 복음에서 그리스도께 치유의 은총을 청하는 병자들도 마찬가지였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마음 속 깊은 생각들을 모두 아시고 헤아려 주시는 하느님께서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의 영적 봉헌을 깊이 받아주시도록 저도 함께 마음을 모읍니다.  

  내면의 아픔은 어떤가요. 특히, 영적으로 아파하고 마비되게끔 만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마르 7,15) 나를 더럽히는 것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자신을 옭아매고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듯한 내면의 어려움들은 참 끈질기게도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루 다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내면의 문제들은 늘 우리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육신의 아픔에 못지않게 거기에서부터 해방되고자 원하게 됨은 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번번이 부딪히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다른 이가 나에게 던지는 상처와 아픔, 아이러니하게도 선한 의지를 갖고 행하는 봉사나 희생도 우리 속을 뒤집어 놓기도 합니다. 그저 이것저것 방해 없이 ‘가만히’ 있기를 바라게 되기도 합니다. 역시나, 생명의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치유 사화를 전함에 있어 낫게 되기를 청하는 사람의 그 원의(願意)만을 부각시키지 않습니다. 치유의 은사를 청하는 이가 어떤 삶을 살아온 누구인지, 현재의 상태가 어떠한지, 무엇을 어떻게 청하고 있는지,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람을 어떻게 맞아들이고 계시는지, 그에게 어떤 말씀을 건네시고 어떤 행동을 하시는지, 그리고 치유된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됐는지 등등의 요소들이 같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치유 이야기를 읽고 묵상할 때에 이러한 요소들을 헤아려보는 것은 치유를 요하는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우리의 간절함과 생명의 하느님 뜻이 일치되는 것이 궁극적인 치유임을 성경은 전하는 것이지요. 어려움을 지니고 치유자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은 그 자체로 구원의 길일 것입니다. 육신의 고통과 영적인 메마름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스스로 그것을 원하게끔 만드는 용기를 우리에게 심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가봅니다.

  무더운 여름, 생명의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복된 날들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7ㄴ-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