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성지

Home

성지회보
기사

양근성지 신부님 글

양근성지에서 온 편지 9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9-01 조회수 : 308

양근성지 후원 가족 모두에게 9월 인사 올립니다. ‘코로나 19’ 팬대믹과 가을장마로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 힘내시고 건강하시길 사랑하는 주님께 청합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하니 코로나 19’도 가을장마도 곧 지나가리라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요즈음 성지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할 정도입니다. 정부의 거리두기 4단계격상으로 비대면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코로나 4단계 시 미사 봉헌 인원이 성지는 12명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개인 미사를 봉헌하고, 주일에는 봉사자분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코로나 19’ 팬대믹과 비대면 미사가 이어지면서 성지 재정이 간당간당합니다. 아무쪼록 양근성지 부도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고, 미사봉헌을 양근성지로 많은 분들이 해 주시길 청합니다. 개인미사 아주 열심히, 지극 정성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요즈음 점심을 먹고 시간이 충분할 때 자전거를 타고 팔당대교 넘어 미사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저만의 시간을 가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거리는 대략 70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제가 타는 자전거는 싸이클이 아니라 일반 엠티비 자전거라 4시간 이상 걸립니다.

자전거를 혼자 타고 가다 보면 자연도 보고, 사람도 많이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즐겨 부르는 콧노래는 성가와 7080 노래들입니다. 특히 성가는 위령 성가인 용서로 죄 사함의 희망 주시는...’으로 시작하는 노래와, 7080노래는 대학가요제 히트곡과 이선희, 이문세님의 곡을 즐겨 부릅니다.

혼자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돌리고, 콧노래를 부르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고, 무념무상의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가끔 몸매 좋은 자매님을 보거나, 자전거에 스피커를 달고 음악을 크게 트는 라이더를 만나면 무념무상은 곧 깨지고 맙니다.

요즈음 얼마나 콧노래를 부르시는지요? 우리 인생에서 콧노래가 사라진다는 것은 희망이 없는 절망, 고독, 우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징표일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주변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피해 유다 산골에 있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달가량 머무십니다. 성모님은 유다 산골 엘리사벳의 집에서 많은 위로와 힘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을 만나 그 유명한 마니피캇즉 마리아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억눌리고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노래입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만나 이 노래를 부르신 것은 마니피캇이 성모님의 애창곡이며 성모님의 콧노래 1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 비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 임금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대며 임금의 초대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임금은 진노하며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없이 모두 데려 옵니다.

임금의 초대를 거부한 사람들은 대개 과거의 걱정, 미래의 불안, 현재의 두려움 속에 사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임금의 초대에 흔쾌히 허락한 이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진정 오늘만 사는 이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께서는 코로나 19’ 팬대믹 속에서도 우리를 매일 초대하십니다. 어떤 때는 성당으로, 어떤 때는 독서로, 어떤 때는 산이나 강으로, 어떤 때는 좋은 영화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의 초대에는 무념무상과 콧노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 무엇인가에 몰입하는 순간은 모두 하느님의 초대, 즉 천국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그리고 인생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날 사람은 만납니다. 그러기에 우리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건 사고와 사람들을 피하고 거부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자신 있게 받아들이고 즐겼으면 합니다.

흔히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무엇보다도 각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춥니다. 실존이란 오늘을 살아가는 각 개인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처럼 코로나 19’ 팬대믹, 가을장마, 그리고 기상이변, 아이티의 지진, 아프카니스탄의 혼란을 지켜보며 인간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내자신의 삶의 의미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각 개인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 삶의 조화와 균형이 깨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계속되는 코로나 19’ 팬대믹 속에서 삶의 목표, 삶의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고, 자기를 성찰하며 주님과 하나 되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야 할 것입니다.


-권일수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