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세상살이에 가정이 해체되고 젊은 부부들의 이혼이 늘어만 가는 요즘, 58년 결혼생활을 신앙과 사랑으로 이겨내 온 노부부를 만났다. 월피동본당 이경림(치릴로, 91), 민병부(안나, 78) 부부가 이들이다.
9년 전,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버스에 치여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뇌를 다쳐 1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고, 중풍이 겹쳐 얼굴과 팔이 돌아가는 전신마비가 왔다. 그때부터 민병부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왔다. 꼼짝없이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은 물론 음식까지 항상 먹여주어야만 했다. ‘남편을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는 할머니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한번은 70kg이 넘는 할아버지를 목욕시키다가 너무 힘들어 같이 쓰러져 울던 적이 있었다. 이 일이 있기 바로 전날, 민병부 할머니는 하느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성체조배를 하는데,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시고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내 손을 잡아 달라.”고 하셨다는 것. 하느님께서 미리 자신의 마음을 읽으시고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할머니는, 그때부터 할아버지를 주님으로 알고 사랑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자신을 회개하며 눈물로 기도한 할머니. 사실 이들이 아름답게 서로 사랑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힘은 신앙이었다.
“내 죄로 인해 (남편이) 사고 당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는 민병부 할머니는 “내 십자가를 지고 보속의 길을 걸어가는 것뿐”이라며, 지금은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영세 후 단 한 번도 평일미사를 거르지 않았을 만큼 철저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온 할머니는 하루 일과 마저 놀라울 정도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예수님께 드리는 감사기도로 하루를 열어 오후 3시에는 성체조배를 드리며, 저녁기도와 함께 바치는 묵주기도는 매일 200단 정도 바친다. 소공동체 모임 뿐만 아니라 본당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어려운 형편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빈첸시오 회비를 납부하며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요즘 들어서 이경림 할아버지는 ‘주모송’과 ‘자유 기도’를 더욱 간절히 바치고 있다. “내가 그동안 ‘천사’를 만나서 이렇게 편안하게 지냈는데, 이제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하니 빨리 나를 데려가 달라고 기도 한다”며, “내가 (아내를) 너무 고생만 시켜서 항상 미안하다”고 눈시울을 적신다.
민병부 할머니의 소망은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 좀 더 편안하게 살다 하느님 품으로 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남편을 위한 선종기도를 바친다”며 애정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지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인내하며 하느님 사랑으로 이겨나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민병부 할머니는 “젊은 부부들이 신앙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며 살아가길 바란다.”며 당부의 말을 남겼다.
박명영 명예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