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전 행사 취재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동생 실비아가 울먹인다. 올해 85세인 아버지 마르코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해 검사 중이란다. 황급히 주최 측에 알리고 서울로 향했지만, 불효자의 마음에는 ‘왜 하필 오늘인가...내일은 동탄에 있는 성당에도 가야 하는데...’라는 불만의 소리가 먼저 들렸다. 묵주기도로 마음을 다잡는다.
병원에 도착해 중환자실에 옮기신 아버지를 뵈었다. 의식도 없는 상태로 호흡기를 꽂고 있는 모습에 울음만 나왔다.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 드릴 순 없었다. 의사의 말로는 급성폐렴인데 워낙 고령이라 간,신장 상태도 좋지 않아 임종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친척들에게 연락을 하라고 한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동안 성당에도 잘 나가지 않은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 나는 여동생 에게 본당에 연락해 병자성사를 청하라고 했다. 의사가 24시간 대기하라 하여 중환자실 대기실에서 혼자 머물렀다. 중환자실은 하루3번 30분씩만 면회가 허용된다.
다음날인 주일 아침 면회시간. 아버지는 여전히 의식이 없다. 애가 탄다. 주일인데다가 본당에 세례식 있어 신부님들이 모두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해 마음이 타들어 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 뿐. 다시 점심 면회시간에 여전히 의식이 없는 아버지 이마에 십자표를 긋고 귀에 대고 말한다. “아버지, 기도 하세요.하느님께 매달리세요.”
저녁 면회 시간이 왔지만, 아직도 의식이 없는 아버지께 또 기도하시길 청했다. 면회시간이 다 되었다는 간호사의 말에 나오려는 순간,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에서 힘이 느껴졌다. 가지 말라는 의미 같아 눈물만 흘렸다.
다행히 내일 아침 병자성사를 주러 오신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간호사가 반대를 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니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고 어렵게 허락을 받고, 그때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웅성거린다. 놀라서 일어났더니 사람들이 와서 울고 있다. 아버지 옆 침대에 있던 사람이 돌아 가셨단다. 남의 일이 아닌 거 같아 함께 슬퍼진 나는, 그 때부터 문이 열릴 때마다 놀라 깨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 면회시간. 본당 보좌신부님과 원장수녀님이 함께 오셔서 아버지가 병자 성사를 받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안심이 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앓는 사람에게 강복하시고 갖가지 은혜로 지켜 주시니, 주님께 애원하는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아버지 마르코의 병을 낫게 하시며, 건강을 도로 주소서. 주님의 손으로 일으켜 주시고, 주님의 팔로 감싸 주시며, 주님의 힘으로 굳세게 하시어 더욱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그날 점심 의식이 돌아 온 아버지는 저녁 면회시간에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한다. 볼펜을 드리니 힘없는 필체로 간신히 몇자 적었다. "언제까지" 그리고 다음은 "신부님"이라 쓰고, 힘이 없어 더 이상 쓰지 못했다. 의사가 와서 경과가 많이 좋아 졌다며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화요일 아침 면회 후에는 호흡기를 떼고 면회 오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미소도 짓는다. 목요일 오후에는 일반 병실로 옮겼다. 이젠 말도 하신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느냐 물으니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아버지는 다만 돌아가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흰 옷을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깨어나니 성당이었다고 한다. 아마 병자성사를 받을 때 깨어나 신부님과 수녀님을 보고 성당이라 생각하신 것 같다. “죽음 앞에 놓이니 하느님을 찾게 되더라”는 아버지는 이제 다시 태어났으니 퇴원 하면 성당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연휴기간 3일 동안 병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밤낮을 지내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3년 동안 해마다 아버지와 추억여행을 하고 많은 사진을 찍어 앨범으로 만들어 드렸던 일이 가장 내가 잘했던 일이었나 보다. 손자들 결혼 하는 것을 보고 나면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로 날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버지는 만 14일 만에 퇴원을 해 집에서 쉬고 있다. 이제 다시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야겠다. 마지막이 언제가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하느님.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다시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정현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