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묵주기도·2부 대축일 미사로 축제 진행
노래와 이야기가 함께한 축제의 묵주기도
떠들썩한 축제 아닌 기쁨·은총 가득한 행사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마리아가 지상에서의 생애를 마치고 하늘로 불러올림 받은 것을 온 세상 교회가 기념하는 날이다. 같은 날 일제에서 해방된 우리나라는 성모 마리아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순교자들은 박해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 마리아에게 의탁했다. 순교자들의 성모신심은 지금에도 이어져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는 우리나라 교회의 주보성인으로서 많은 신자들의 귀감이 되어왔다. 순교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잃지 않았던 성모신심이 있었기에 1991년 10월 7일 고 김남수 주교는 순교지인 남양을 한국 천주교회의 첫 성모성지로 선포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하루 앞 둔 14일. 남양성모성지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축제가 열렸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어둠이 내린 남양성모성지에 기도소리가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한 알 한 알 굴리는 묵주 알에는 진지함이 배어났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된 묵주기도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전야축제. 일반적인 떠들썩한 축제가 아니다. 고요하고 잔잔한, 그러나 기쁨과 은총이 가득한 기도의 축제였다. 묵주를 정성스레 손에 쥔 모습이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는 신자들의 마음을 말해줬다.
드문드문 내리는 보슬비로 축제자리는 성당으로 옮겨졌다. 비록 초는 켤 수 없었지만 기도하고 성가를 노래하는 신자들의 눈동자가 촛불처럼 빛났다.
“Ave Maria, Gratia plena…(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소프라노의 맑은 음성이 아베마리아를 노래했다. 엘로힘 싱어즈(단장 이상원 다니엘)는 전야축제의 1부 ‘노래와 이야기가 있는 묵주기도’에서 묵주기도 사이사이를 성가로 채웠다. 이날 축제의 성가는 음악회나 연주회의 성가와는 달랐다. ‘아베마리아’, ‘어머니 당신 이름은’, ‘나의 생명 드리니’, ‘성체 안에 계신 예수’. 곡은 같았을지라도 성가를 듣는 신자들의 표정에 서린 엄숙함과 경건함은 바로 기도하는 이의 모습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성가를 두 배의 기도라고 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성가소리가 묵주기도를 더욱 풍성하게 해줬다.
축제의 묵주기도에는 노래만이 아니라 이야기도 함께했다. 죄인들을 도우시는 하느님의 어머니를 이야기한 성 비오 신부, 선고를 받은 이를 대신해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에 생을 마감한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묵주 하나를 지닌 채 옥중 생활을 견뎌낸 구엔 반 투안 대주교. 그들이 성모 마리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성모 마리아를 사랑한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성인들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다시 한 번 성모 마리아를 떠올렸다.
1부 묵주기도에 이어 2부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가 봉헌됐다. 밤은 점점 깊어 오후 10시가 지났지만 성당은 여전히 신자들로 가득했다. 남양성모성지 전담 이상각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엄마만큼 여러분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면서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님만큼 예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의 빛나는 모범”이라고 말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축제의 마지막 말은 하느님에 대한 감사로 맺어졌다.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키심을 기억하게 한다. 영원한 생명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성모 마리아처럼 그리스도의 완전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는 희망의 표지다. 이날 남양성모성지에 모인 신자들은 성모승천이라는 희망의 표지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축제를 마쳤다.
▲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축제에 참가한 신자들이 양팔을 들고 아베마리아를 노래하고 있다.
▲ 1부 ‘노래와 이야기가 있는 묵주기도’에서 엘로힘 싱어즈가 맑은 고운 음성으로 묵주기도 사이사이를 성가로 채웠다.
▲ 전야축제에 참가한 신자가 마음을 다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이승훈 기자 (
josepb@catimes.kr)
[특별기고] “도보순례자 여러분, 힘내세요”
남양성모성지 전담 이상각 신부
고통 통해 자신의 한계 체험할 때 정직
가족·동료와 진솔한 대화 나누는 시간
최근 휴가철을 보내며, 많은 신자들이 전국 각 교구 성지 곳곳을 잇는 도보순례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수원교구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교구 내 15개 성지를 연결한 도보성지순례길 ‘디딤길’을 구축, 많은 신자들이 도보순례에 나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매일같이 수많은 순례객들을 맞이하는 남양성모성지 전담 이상각 신부가 이 시각, 곳곳에서 도보순례의 길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 이상각 신부
그동안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먼 길을 걸어서 이동한 적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또는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길을 몇 시간이고 걸어본 일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보통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고, 사람들에 쫓겨서 빠르게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 생활에서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될 이동 수단이 되었고 조금만 먼 거리도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선교사 일행이 아프리카에서 겪은 이야기는 이러한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한참 길을 가던 원주민 짐꾼들이 갑자기 길가에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달래도 보고 돈을 더 주겠다고 흥정을 해 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당신네 백인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너무 속도를 냈어요. 이제는 우리의 혼이 우리의 몸을 따라 잡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요즘처럼 무덥고 습기가 많고 무더운 날씨에 먼 길을 걸어오는 동안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자동차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었던 여러분의 영혼이 여러분을 따라올 시간을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왔던 여러분은 모처럼 오랜 시간 걸으면서 이런 저런 여러 생각들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이고 또한 함께 걷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아픔도 나누고 위로와 우정도 나누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고통의 표정이야말로 인간의 얼굴에서 가장 진실한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고통을 겪으면서 모든 위선의 가면을 벗고 진정한 나, 발가벗은 채로의 나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고통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체험할 때 정직해집니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여정이 여러분들에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또 그만큼 값지고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동안 뒤쳐져 있던 여러분의 영혼을 만나고 진정한 나와 또 가족과 친구,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상각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