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예수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며 대림기간을 한창 보내던 때, 어렵사리 마련한 장애인들의 보금자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네요.
교구 산하 장애인 복지시설인 경기도 양평 평화의 집에 불이 났는데,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5명이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생명까지 잃었습니다. 생존한 이들도 다치거나 화재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을 많이 받았답니다.
평화의 집을 관할하던 양동본당 주임신부님은 갑작스럽게 집을 잃고 오갈 데 없이 떨고 있는 장애인들을 인근에 있는 상록촌 복지관에 머무를 수 있도록 빠르게 조치했습니다. 장애인들은 이곳에서 신자들과 지역주민들의 보호를 받았는데요, 저도 곧바로 상록촌을 찾아 위로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평화의 집은 그동안에도 신자들의 후원금 등으로 어렵게 운영되어왔던 터라, 자체적인 복구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던 저는 교구민들에게 화재 복구를 위한 특별헌금을 요청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장애인들을 위한 따뜻한 온정을 보여주셨습니다. 평화의 집을 관할하고 있는 수원교구 동부지구 신부님들도 긴급 지구사제회의를 열고 2차 헌금과 자선비 등을 모아 관할 양동본당을 통해 평화의 집을 후원했습니다.
특히 전국 각지의 신자들이 평화의 집 복구를 위한 봉헌금을 보내주셨는데요. 이뿐만 아니라 이웃의 많은 비신자들도 정성을 보태며,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인근에 위치한 20사단 공병대도 화재로 엉망이 된 잔재를 정리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짓는데 큰 힘을 써주었습니다.
추운 겨울, IMF 경제위기까지 불어 닥친 때였지만, 우리 교구민들뿐 아니라 전국 각 지의 신자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주신 덕분에 평화의 집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또한 곧바로 다가온 설날은 다행히도 평화의 집 가족들이 모두 새 보금자리에 모여 보낼 수 있었는데요. 이웃의 따스한 관심과 나눔은 장애인들이 다시 희망을 채워 재기할 수 있는 가장 큰 디딤돌이었습니다.
▲ 1997년 화재로 소실됐던 경기도 양평 ‘평화의 집’ 현장 모습.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