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새벽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사제관을 나서는데 마리아 할머니가 성모님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많던 주름살도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고, 성모님의 모습과 닮은 할머니만이 있었다. 2년 전과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성모님을 사랑한 할머니의 마음이 결국 성모님을 닮아가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2년 전의 그 기분 나쁜 냄새는 20년 동안 죽어 있던 신앙이 썩은 냄새였고, 오늘 맡았던 그 향기는 2년 동안 ‘거지 할머니’가 만든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향기, 성모님께서 주신 향기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 할머니는 성모님처럼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의 행복을 알았고, 그 모습을 본 자식들도 회개하고 완전한 성가정을 이루게 됐다. 마리아 할머니가 하느님을 외면하고 지낸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아들도 할머니를 찾지 않았다.
아마 자식들은 어머니가 거지꼴로 지낸다는 것을 알긴 했겠지만 돌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다시 성당에 나오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여 년 동안 연락조차 되지 않던 아들이 기적처럼 찾아왔다. 너무나도 인자한 모습으로 꿈속에 나타나 그동안 아들에게 소홀하였던 것을 미안해하며 안부를 묻는 어머니. 그 모습을 반복해 만난 아들이 기어이 어머니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게다가 할머니의 깊은 믿음을 가까이에서 접한 아들 내외와 손자들까지 모두 하느님 품 안에서 하나가 돼 하느님께서 주신 참 행복을 누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6개월이 지나, 내가 군종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내 바짓단을 붙잡았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 같은 애틋한 마음에 나를 잡았던 할머니의 진심과 기도는 내가 군종으로 생활하는 20년 동안 힘들었던 순간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됐다. 마리아 할머니는 나를 통해 성당에 다시 나오게 됐지만, 내가 오히려 할머니를 통해 신앙의 힘을 깨닫게 됐다. 마리아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를 통해 깨달은 믿음의 소중함은 내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마리아 할머니, 감사합니다!”
이영배 신부(교구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