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간의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까니시아눔에서 신학석사를 받고, 독일 트리엘로 자리를 옮겼다. 모든 경제적인 뒷바라지를 해줬던 칼 보로메오 수녀원에서 기숙하며 공부를 계속하기로 했다. 수녀원은 지도 신부님께서 인스브루크 까니시아눔 출신이라는 이유로 전교지방에서 온 나를 도와줬다. 방학이 되면 그 수녀원에서 지내기도 했다.
한국의 가톨릭대학에서 10학기, 인스브루크 신학대학에서 6학기 등 총 16학기를 이수하고 사제서품을 받았지만 학위를 받기위해서는 트리엘 신학대학에서 3학기를 더 해야 했다. 19학기 동안 대학공부를 했지만 아직도 학위는 취득하지 못했다.
인스브루크 신학대학 교수 예수회 융만(J.A.Jungmann) 신부의 제자이자 트리엘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 발타사르 피셔(Balthasar Fischer) 신부를 지도교수로 모시고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 받았다. 당시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한편, 건물 옆 전례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며 박사 논문 주제를 찾아 나갔다. 많은 교수들이 전교지방에서 온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지역과 관련된 주제로 논문을 쓰도록 권했었다. 나에게도 한국 천주교회와 관련된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길 바랐다.
주제 잡기가 어려워 인스브루크로 가서 융만 신부님께 상의를 드리자, ‘100여 년 이상 박해를 받았음에도 지금까지 신앙을 지켜온 길잡이는 한국교회의 기도서가 아닌가’ 하는 답변을 받았다. 덕분에 한국 천주성교 공과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한국에서 목판으로 출간된 천주성교 공과를 찾아 우편으로 요청하고,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80km 떨어진 샹띠이의 예수회 도서관에서 중국에서 발간된 예수회 계통의 공과와 파리외방전교회 계통의 공과들을 찾아 대조연구를 하며 3개월간 파리에서 지내기도 했다.
마침내 1969년 2월 15일 ‘한국 천주성교 공과. 그의 출처와 1963년 판까지의 발전과정’이라는 주제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