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 주교 등 35명 성직자 안장돼
무명 순교자 묘소 12기도 모셔와 현양
“하느님께 일생 바친 이들 위해 기도를”
▲ 미리내성지 내 교구 성직자 묘지에 있는 사제들의 묘.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 미리내성지는 성 김대건 신부가 묻힌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성지에 묻힌 유해는 성인뿐만이 아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와 교구에서 신자들을 돌보다 선종한 성직자들도 이 땅에 묻혀있다. 교구 성직자 묘지를 찾았다.
순례객들의 발길로 약간은 떠들썩한 미리내성지 입구를 지나 오른편, 미리내성요셉성당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성당을 지나 오르막을 따라 걸으면 산자락에 높이 솟은 십자가가 보인다. 바로 교구 성직자 묘지로 가는 길이다.
잘 정돈된 빈 터를 지나자 사제들의 얼굴이 담긴 게시판이 보인다. 교구 제2대 교구장인 김남수 주교(1922~2002)를 비롯해 교구 곳곳에서 열정적으로 사목활동을 펼치다 하느님 품에 안긴 35명 사제의 얼굴과 이름이 담겨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곁에 있던 사제의 얼굴에 반가움과 그리움이 교차한다.
묘지는 선종한 순서대로 위에서부터 차례로 자리잡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죽음의 순간은 태어나는 순서와 무관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지나온 빈 터에 앞으로 묻히는 순서는 주님만이 아실 것이다.
사제들의 묘에는 꽃송이들이 놓여있었다. 위령성월인 이때에 선종한 사제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신자들이 남긴 꽃송이다.
교회가 죽은 이를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은 초대교회부터 이어온 일이다. 초대교회는 유대의 관습과는 별도의 법에 따라 죽은 이들을 매장해왔다. 성령이 머무는 성전(聖殿)인 육신을 소중히 다뤘기 때문이다.
산자락을 따라 조성된 묘지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자 작은 제대와 무명 순교자의 묘가 보였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이 있는 교회 묘지를 죽은 이들이 부활을 기다리는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 초대교회의 묘지는 대부분 로마에 있는데, 특히 순교자들의 묘지는 축성된 장소로 공경됐다. 이곳 역시 순교자들이 묻힌 축성된 자리다.
교구는 1976년 순교자현양사업을 진행하면서 교구 도처에 묻힌 무명 순교자의 시신 17위를 이곳에 이장했다. 방치되던 순교자들의 묘소가 훼손되는 것을 예방하고, 성지에서 현양하기 위해서였다. 그중 1위는 이윤일(요한) 성인으로 밝혀져 1986년 대구 관덕정으로, 서봉부락 돌무덤 순교자 4위는 2013년 순교자들이 생전 신앙생활을 하던 손골성지로 옮겨져 현양하고 있다.
지금 묻혀있는 12기는 용인 내사면 대대4리에 목 없는 순교자의 줄무덤에서 이장한 유해다. 용인 한터 사기점에서 교우촌을 이루며 살다가 박해로 치명했다는 것만 미루어 짐작할 뿐, 이름과 고향, 삶의 자취는 알지 못한다.
떠나기 전에 자신의 이름과 삶마저 하느님께 봉헌한 순교자와 일생을 하느님 사업에 바친 사제들이 묻힌 땅에서 위령기도를 바쳤다. 이들이 일생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옥의 영혼들을 기억하면서 나 또한 영원한 생명을 향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했다.
▲ 미리내성지 입구에서 교구 성직자 묘지로 가는 길.
▲ 무명 순교자의 묘.
이승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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