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을 필리핀에서 보내게 되면서 전례에 참석 못한 아쉬움일까?
재의 수요일 전, 가이드가 마닐라성당 방문 일정을 얘기했을 때, 내 마음은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설렜다.
부푼 마음으로 찾은 필리핀 마닐라 대성전은 세례식으로 북적였지만, 주교님과 사제, 신자들은 이방인 같은 나를 반겨주셨다. 가이드의 재촉으로 비록 성체는 못 모셨지만 마음은 날아갈 것 같은 재의 수요일을 보내고 본당에서 맞이한 첫 금요일.
아무 생각 없이 아침을 거르고 미사 후 바친 십자가의 길은 그저 수난에 동참한다는 생각이었다.
두 번째 찾아온 금요일 십자가의 길에선 해설자가 읽어주는 묵상 글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느꼈다. 예수님은 당신을 못 박았던 사람들까지도 용서하셨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힘까지도 당하셨는데도, 나는 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안지도 또 용서하지도 못함에 회개의 눈물을 쏟았다.
드디어 성삼일 전례 첫 날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에 참여하였다. 발 씻김 예식에 앞서 갑자기 본당 신부님께서 복사들이 들고 온 바구니에 담긴 말씀을 뽑으라고 하셨다. 아무 생각 없이 뽑았는데, 신부님께서 ‘내가 네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라는 말씀을 뽑은 사람들을 일어나라고 하더니, 그분들이 오늘 발 씻김을 해줘야 하는 대상이라는 말에 모두 다 ‘아!’하는 탄성이 나왔다.
발 씻김을 하는데 또 한 번 신자들은 놀라움과 감동에 사로잡혔다. 무릎을 꿇고 발을 씻겨주던 주임 신부님은 옆 사람에게로 가실 때 무릎 걸음으로 가시는 것이었다. 발 씻김 받는 신자들의 소리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고, 그걸 지켜보는 신자들도 눈물로 지켜보며 자신의 죄를 씻어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였다는 신자들이 많았었다.
이날 발 씻김을 받았던 윤준상(마리아요셉. 중3)은 “신부님께서 무릎 걸음으로 다가와 내발을 씻길 때 슬픔이 밀려왔고 감동이었다.”며,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였다.”고 감동을 전했다.
다음 날 오후 3시 십자가의 길을 바칠 때는 신부님께서 직접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해주셨다. 9처에서 ‘예수님은 고통을 오롯이 다 받아들이셨는데, 우리들은 조그마한 아픔도 견디기 힘들어 마약을 하고 알코올중독에 빠져든다면서, 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에서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십자가의 길을 바치기 전에 온몸이 아파 ‘예수님, 저를 조금만 사랑해주세요.’라고 했던 나 자신이 생각나 울었고, 조금만 아파도 진통제에 의지하였던 나 자신을 반성하였다.
드디어 부활 성야 미사, 주임 신부님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여러분들도 사순절 잘 준비하였기에 오늘 부활한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난 부활을 잘 맞이하였다기보다 그냥 기뻤다. 예수님께서 내안에 오신 것을 느끼는 순간 한없이 기쁨이 밀려왔다.
박명영 가타리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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