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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소식

교구아들 바오로와 함께 하는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2

작성자 : 홍보전산실 작성일 : 2016-08-17 조회수 : 1241



   지난 6월 21일. 아들과 함께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안양대리구에 위치한 수리산성지(전담 이헌수 요셉 신부)이다.


   수리산성지는 최양업 신부의 부친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신유박해 이후 많은 신앙 선조들이 박해로 모여 와 살았던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본래 충청도 청양 다락골 사람이었던 최경환 성인은 장남 최양업이 신학생이 되어 마카오로 떠난 후 고발을 빙자한 협잡이꾼들로 인해 가산을 탕진하고 유랑 길을 나서 이곳저곳을 헤매다 이곳 수리산에 정착하게 됐다.

   수리산은 예로부터 담배를 재배해 왔다 해서 ‘담배골’ 또는 골짜기의 생김새가 병목처럼 잘록하게 좁다고 해서 ‘병목골’이라고도 불리었는데, 박해시대 때 외계와 단절된 천혜의 피난처 구실을 해 왔던 곳이다.

   최경환 성인은 1837년 수리산에 들어와 담배를 재배하면서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을 모아 교우촌을 가꾸면서 열렬한 선교 활동을 펴던 중 1839년 기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붙잡혀 감옥에서 옥사했으며 그 후 부인 이성례 마리아도 치명했다.

   옛 교우촌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수리산성지도 아주 깊고 후미진 산골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개발의 영향으로 현재는 안양역에서 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수리산성지 도착 후, 미사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먼저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최경환 묘소 앞에서 참배하기로 하였다. 십자가의 길은 성당 건너편 시냇골을 건너 최경환 성인의 묘가 있는 산 중턱까지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다.


   언덕으로 난 십자가의 길을 아들 바오로와 바칠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는 수난과 고통이 더욱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것 같았지만, 얼굴에 다가오는 따가운 햇볕도 감사함으로 묻어나는 시간들이었다. 날파리들이 얼굴에 붙는다고 짜증을 내던 아들 바오로도 십자가의 길을 바치면서는 조용해졌고, 겸손하게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모습에 진지함이 묻어났다.

   각 처를 갈 때마다 “어머님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란 노래 소리가 성지를 울려 퍼지면서 아들과 바치는 십자가의 길은 더욱더 가슴을 따뜻하게 하면서 마음에 파고들었다.

   최경환 묘소 앞에서 순교자의 마음으로 기도하였고 사제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로서의 걸어갔던 길들이 오롯이 느껴져서 마음이 찡했다. 성모님께 아들 바오로와 나의 순례 길에 함께 하여주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고는 전대사를 얻기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헌수 신부는 강론 중에 “최경환 순교자는 원래 성품이 불같았지만, 아들이 사제가 되고 신앙생활에 젖어들면서 온화한 성품으로 변화되었다.”고 말씀했을 때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나도 신앙생활하고 아들 바오로를 봉헌하면서 불같은 성품을 온화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자주 바쳤고, 지금은 그 불같은 성격이 다 없어졌다. 온화한 성품으로 되기까지 기도를 많이 하고 나 자신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봉헌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미사 때 6월 29일이 축일인 바오로는 신부님으로부터 축일 선물도 받고는 싱글벙글 좋아하였다.


   미사 후 수리산 성지를 담당하고 계신 이헌수 신부님께 바오로랑 인사드리니까 알아보시고 반갑게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니 아들 바오로가 든든하게 보였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본당 신부로 계셨던 이헌수 신부님과의 추억이 새롭다고 떠들어대는 아들, 이헌수 신부님의 힘찬 사목활동이 마음에 와 닿는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이다.


   “오! 주님, ‘아들 바오로도 저렇게 훌륭한 사제의 길을 걸어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박명영 가타리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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