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축일인 지난 6월 29일. 아들과 함께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네 번째로 찾은 곳은 수원교구 이천에 위치한 ‘성가정 단내성지’와 ‘청소년성지인 어농성지’다.
먼저 성가정성지인 단내성지를 찾았다. 성지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큰 성가정상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성가정성지라서 그런지 들어가는 입구에 가로수로 심어진 숲길이 포근했다. 성지를 향해 한 5분쯤 걷는 숲길엔 잔잔한 성가가 들려와 순례자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었다.
먼저 순교자 정은 바오로와 정 베드로 유해가 묻혀있는 묘를 참배하였다. 바오로와 베드로의 축일에 단내성지를 방문해 참배하니 아들 바오로를 전구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이어서 순교자들 이문우 성인의 고향과 김대건 신부의 사목 활동 경로를 조망할 수 있는 예수 성심상과 병인박해를 전후해서 신자들의 은신처였던 검은 바위와 굴 바위성지를 한 바퀴 돌고는 바오로와 같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다.
김대건 신부의 사목 활동 경로를 따라 조성된 총 5.2km의 순례 코스가 마련되어 있는 단내 성가정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정은 바오로(1804-1866년)와 정 베드로 순교자의 고향이자 유해가 묻혀있는 곳이다.
단내성지에서 기념하는 순교자 대부분이 가족 순교자들이고, 또한 남달리 극진한 가족 사랑을 보여준 분들이다. 그래서 단내성지를 가정 성화를 위해 순례하는 성가정 성지로 관리하고 있다.
단천리는 한국에 교회가 세워지던 1784년 이전부터 천주교와 연관이 있었던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한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교우촌 가운데 하나인 단내마을(단천리)과 동산 밑마을(동산리)은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 활동지이기도 하다. 또한 이천(동산 밑 마을)이 고향인 이문우 성인, 조증이 성녀와 조증이 성녀의 남편으로 이천에서 체포되어 순교한 남이관 성인을 비롯하여 이호영 성인, 이 아가타 성녀 등 다섯 분의 순교 성인을 기념하는 성지이기도 하다.
전대사를 얻기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니, 아들 바오로 축일을 축하하면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신부님께서 바오로에게 지금 뭐하느냐고 묻자 ‘백수’라는 아들의 답변에, “이제부터 넌 ‘백수’가 아니라 ‘백숙’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먹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난 그 말을 알아들었지만 아들 바오로는 자신에게 맞는 말을 해주신 신부님의 그 말뜻을 이해했는지 “예”하고는 웃기만 했다. 난 그저 성모님처럼 신부님의 말씀을 하느님 말씀으로 ‘곰곰이’ 되새기며 가슴에 간직하였다. 바오로가 지금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나중엔 그 말뜻을 이해하리라 생각해 본다.
이어서 단내성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어농성지로 향했다.
어농 청소년성지는 1987년 9월 15일 故김남수(안젤로) 주교에 의해 축복되었고, 2002년 8월 전임 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에 의해 “을묘박해,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선조들을 기리고 현양하기 위한 기념성지”로 선포되었다.
어농 청소년성지에서는 1795년의 을묘박해로 순교한 최초의 밀사 윤유일(바오로), 지황(사바), 최인길(마티아)를 현양하고, 1801년의 신유박해로 순교한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비롯하여 윤유일의 아우 윤유오(야고보), 사촌 여동생 윤점혜(아가타) 동정 순교자, 윤운혜(루치아)‧정광수(바르나바) 부부 순교자, 여회장 강완숙(골룸바)와 경기도 출신으로 신유박해 때 순교한 조용삼(베드로), 최창주(마르첼리노), 이중배(마르티노), 원경도(요한), 심아기(바르바라), 한덕운(토마스), 그리고 강완숙의 아들 홍필주(필립보) 등 총 열입곱 분의 순교자를 현양하고 있다.
이상 열일곱 분의 순교자는 현재 그 성덕을 높이 인정받아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었고, 그 후 시복 시정 절차에 따라 시복되었다. 그리고 2007년에 성지 설정 20주년을 기해 청소년 성지로 선포된 어농 청소년성지에서는 청소년‧청년 등에 알맞은 위탁 피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어농성지 도착 후, 먼저 신유박해로 순교한 주문모(야고보) 신부 및 을묘박해로 순교한 최초의 밀사 윤유일(바오로)와 순교자들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기도하였다.
순교자 묘역에는 17위 순교자들의 묘가 안장되어 있는데 윤유오의 묘를 제외하면 모두 시신이 없다. 또 윤유일의 치적비와 그의 동상, 주문모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성지를 돌아보았다. 성지 경내에는 순교자 묘역, 성당, 십자가의 길, 십자가 동산 등이 조성되어 있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많은 통나무 십자가가 안치되어 있었다. 뜨거운 한낮의 열기로 땀이 줄줄 흘렀지만 순교자들을 찾아 순례하는 아들 바오로와 나의 순례 길을 막지는 못했다. 땀을 흘리는 만큼 더 큰 은혜로운 순례길이 되어주었다.
박명영 가타리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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