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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소식

교구아들 바오로와 함께 하는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6

작성자 : 홍보전산실 작성일 : 2016-09-13 조회수 : 1170

   7월 15일. 아들 바오로와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여섯 번째로 찾은 곳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요당리성지였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성지에 도착하니, 신부님께서 휴가 중이라 미사가 없다고 해 난처했다. 그런데 사무장이 지금 빨리 남양성모성지로 가면 미사를 드릴 수 있다고 해서 요당리성지에 발을 내리지도 못하고 남양성모성지로 차로 달렸다. 다행히 미사가 시작되자마자 도착하였다. 남양성모성지에서도 이상각 신부님께서 휴가 중이신지 도미니꼬수도회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지난 번 전대사를 얻기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는 남양성모성지를 찾은 첫 날,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묵주기도 길만 돌아보고 아쉬웠는데, 상황이 이리되고 보니 성모님께서 바오로와 나를 이 성지로 다시 발길을 하게끔 만드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양성모성지에서 십자가의 길을 바치자는 나의 말에 바오로는 하느님이 들려주시는 것처럼 뼈있는 말로 일축했다. “엄마는 너무 형식적인 기도에 매여있다고 느껴져요.”라며, “성지를 찾았으면 그 성지의 특색을 느끼고 성지의 전경을 통해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느끼는 체험을 하는 게 좋지 않아요?”라고 한다.


   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고 하느님께서 형식적인 기도 생활에 젖어있던 나에게 아들 바오로 입을 통해 말씀하심을 느꼈다. 그런데도 이름 모를 야생화가 산들산들 손짓하고 솔솔 부는 바람에 가지를 흔드는 나무는 푸르다 못해 눈부신 십자가의 길을 바오로랑 걸으면서 난 빠르게 맘속으로 십자가의 길 기도문을 바치기에 바빴다. 아들 바오로는 “성지, 참 아름답다. 잘 꾸며져 있고 성모님의 사랑이 남양성모성지에 가득함이 느껴진다.”고 감탄했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니 커다란 평화의 예수성심상이 아들 바오로와 나를 포근하게 반겨주었다. 그 옆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안은 성모님의 피에타 상이 있었다. 성모님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십자가형을 받은 아들 시신을 품에 안은 성모님의 가슴은 비참 그 자체였을 것이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으리라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아려오며 통증이 왔다.


   평화의 예수성심상 앞에서 아들 바오로랑 한국천주교성지를 다 돌아볼 은총을 전하는 기도를 바쳤고 또 성모님께 아들을 이끌어달라는 기도 전구를 간절히 하였다.


  평화의 예수성심상을 등지고 내려오니 사람들이 맨발로 자갈밭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있었다. 남양성모성지 소식지엔 ‘이 맨발 자갈 십자가를 바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와 통회를 하고 은총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 옆으론 낙태아 무덤이 있었다. 거기에서 잠시 묵념하였고 목이 말라 내려와서는 남양성모성지의 약수터의 물을 달콤하게 마셨다. 그리곤 동굴로 된 성체조배실로 들어가는 바오로를 따라 나도 들어가 성체조배실 문을 여니, 아들 바오로가 안보였다. 그래서 살그머니 문을 닫고 옆을 보니, 동굴에 서 계신 성모님 상  앞에서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는 바오로가 보였다. 난 조용히 바오로 뒤에서 성모님께 간절히 아들 바오로를 위한 기도를 봉헌하였다. 난 또 형식적인 기도에 빠져 성체조배실 문부터 열었지만, 아들 바오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여 난 깜짝 놀라고 아들 바오로를 통해 많이 느끼고 깨닫는다. 정말 내가 그동안 형식적인 기도를 많이 바쳐왔음을 ~.


   이어서 아침에 요당리성지에서 발도 딛지 못하고 남양성모성지로 와서 다시 요당리성지로 향했다. 요당리성지에 도착하니, 청년 도보성지순례단들이 다녀가는 모습이 보였다.



   요당리성지는 아담한 묵주의 길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요당리성지는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교우촌은 양간 공소라 불리며 갓등이(현재의 왕림)와 은이공소(현재의 양지)와 깊이 연계되어 활발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였다. 또한 바닷물의 유입으로 뱃길이 열렸던 이곳의 지리적 특성상 충청도와 경기도 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 루트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해년(1839년)과 병인년(1866년)에 일어난 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한 신앙의 요람지였다.


   이곳 요당리성지에서 태어났거나 순교한 분들 가운데에는 장주기 요셉 성인과 복자 장 토마스 등 여러 명의 순교자가 있다. 또한 교회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답이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의 책임 하에 이곳에서 운영되었고, 민극가 성인과 함께 신앙 전파에 힘쓰다 순교한 정화경 안드레아 성인이 활동하셨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였다가 순교하신 앵베르 주교와 이분의 피신을 돕다가 순교한 손경서 안드레아의 얼이 서려있다.


   아들 바오로와 난 성지 순교자 묘지에서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순교자 묘지에 세워진 커다란 십자가상이 인상 깊었고 편안함을 주는 성지였다. 마당이 넓었고 예수님이 커다란 나무그늘이 되어 바오로와 나의 순례 길에 함께하여 주어서 좋았다.


박명영 가타리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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