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는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관내 향토문화재를 널리 알리고 문화재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향토문화재 활용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10월 6일, 용인시 남곡리에 위치한 ‘은이 성지’에서는 ‘은이 성지 가을음악회’가 열렸렸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인문학 강의, 클래식 공연, 전등 캠프 파이어’ 등 문화체험 행사도 함께 열렸다.
용인시에서는 ‘은이 성지’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소중한 정신적 문화재를 공유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
이날 ‘인문학 강좌’는 서울대학교 한국사 배기성 겸임 교수가 한 시간 여 동안 진행했다. 배기성 교수는 한국 천주교회에 관한 자료를 스크린을 통해 상영하는 등, 열띤 강의를 펼쳤다.
은이[隱里]는 ‘숨겨진 동네’, 또는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이며, 천주교 박해시기에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이다. 은이는 소년 시절 성 김대건 신부가 신앙을 익히고 사제성소의 꿈을 키웠던 곳이며, 당시 숨어살던 교우들은 은이에서 사기를 구어 생계를 유지하던 요지가 산재하여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맨 처음 미사를 드린 성지이기도 하다.
1822년 충청남도 당진에서 출생한 성 김대건 신부의 가족들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하여 1827년 골배마실과 은이 성지에 생활 터전을 잡았으며, 은이 성지는 1836년 성 김대건 신부가 모방 나 신부로부터 세례 성사와 첫 영성체를 받은 장소이며, 사제가 되어 돌아온 후 최초로 사목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다.
이후 성 김대건 신부는 은이 성지를 중심으로 경기도 이천, 용인, 안성 지방을 두루 다니며 사목 활동에 전념하였다. 1961년 양지 본당의 5대 신부 정원진(루카)에 의해 성 김대건 신부의 집터로 알려진 은이 성지의 발굴이 진행되었고 돌절구와 각종 생활 도구가 발견되면서 성지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골배마실에는 현재 성 김대건 신부가 살던 집터가 양지 컨트리클럽 골프장 한쪽에 보존되어 있으며 그의 석상과 제대, 초가집과 어머니 고씨의 모습을 새긴 부조(浮彫)가 남아 있다. 은이 성지에는 각종 성물과 금가항(金家港) 성당이 있다. 전담 신부가 상주하고 있으며, 골배마실 성지를 함께 관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이 성지에서 미리내 성지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세 고개를 신덕(信德)고개[은이 고개], 망덕(望德)고개[해실이 고개, 장촌고개], 애덕(愛德)고개[오두재 고개]라 이름지어 부르며 성 김대건 신부의 정신을 기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새남터에서 순교한 후 용인의 젊은 신자인 이원식 빈첸시오에 의해 수습된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지나간 길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 김대건 신부의 생전과 사후에 모두 연관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김대건 신부의 신앙정신과 순교열정을 본받으려는 신자들과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용인의 정신적 명소이다.
이윤창 요한사도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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