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철(1795~1839)은 강원도 회양 사람으로,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산을 모두 탕진했고, 살길이 막막해진 조신철은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갔습니다. 절에서 몇 년을 지낸 후 그곳에서 나와 머슴으로 살던 어느 날, 조신철은 중국 북경을 왕래하는 동지사(冬至使)의 마부로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조신철의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마부가 된 그는 정직하고 성실해서 동료들로부터 신망을 받았고, 주위 사람에게는 “사신의 하인 중에 가장 훌륭하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북경을 여러 차례 오가는 동안 교우 유진길과 정하상이 그를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신철을 조선 천주교회의 일꾼으로 키우기 위해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조신철은 교리를 공부하며 많은 것을 깨달았고, 북경에서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받았습니다. 그 후 북경을 드나들며 유방제 신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의 입국을 도왔습니다.
천주를 섬기는 조신철은 어려운 처지의 이웃들을 정성을 다해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외인에게 전교해 열 명 이상이 신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고집 센 아내도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 입교시켰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에 조신철은 최창흡 성인의 딸(성녀 최영이)을 부인으로 맞아들였습니다.
1839년 봄, 조신철이 북경에서 돌아오던 날 꿈을 꾸었습니다. 예수님이 타볼산에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올해 너에게 순교의 은총을 내리겠다.” 조신철은 그 말씀을 듣고 땅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비슷한 꿈을 두 번이나 꾸자 자신이 곧 순교할 것을 예감한 그는 여러 명의 교우가 체포되어 순교하자, 아내에게 “천주를 위해 순교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신철이 잠시 외출한 사이에 포졸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식구들을 모두 잡아갔습니다. 곧바로 포도청으로 달려간 조신철은 구경꾼 사이에서 식구들이 신문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포졸이 구경꾼들에게 가라고 소리쳤으나 조신철은 가지 않았습니다. 포졸이 조신철의 덜미를 잡고 말했습니다. “너는 누구냐?” 조신철은 “나는 신문 당하고 있는 사람의 가장이오.”라고 답했고, 포졸은 조신철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서양인 신부들의 거처를 대라며 신문했습니다. 조신철이 거부하자 그때부터 혹독한 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조신철의 팔과 다리에 주뢰를 틀고 공중에 매달아 마구 때렸으며, 방망이와 곤장으로 수없이 내려쳤습니다. 결국에는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조신철이 포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천국으로 먼저 가니 내 가족에게 용기 내어 따라오라고 전해주시오.” 그의 목에 칼날이 번쩍였습니다. 그렇게 조신철은 순교했습니다.
“나는 온갖 고통을 당해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를 것입니다.”
(조신철 가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