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것이었습니다. 힘든 하루를 보낸 딸은 버스에서 내리기 전, 저 멀리 기숙사 앞 정류장에 앉아 하루 종일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봅니다. 사실 엄마에게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일하시는 아빠가 모처럼 휴가를 얻어 서울에 오신다는 것을, 오신 김에 나를 만나러 오시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오랜만에 아빠를 보니, 하루가 너무 힘들기도 하였기에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아빠 걱정하지 마시라고 재빨리 눈물을 훔칩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빠를 위하는 마음과 다르게 입에선 가시 같은 말이 나옵니다. 내가 언제 올지 알고 추운데 여기서 기다리시냐고, 왜 우리 집은 돈이 없어서 나 유학도 못 가냐고 짜증을 냅니다. 아빠는 그저 묵묵히 짬뽕 국물 속에서 딸이 좋아하는 오징어를 건져주실 뿐이죠. 그렇게 짜증만 내던 딸은 문득 아빠의 손목을 봅니다. ‘천안독립기념관’ 도장이 찍혀있네요. 아빠는 서울이 아니라 사실은 ‘천안’에 오셨던 것이었어요. 그리고 딸을 보러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와 하염없이 기다리셨던 것이었죠. 딸은 또 짜증이 납니다. 그렇게 바보같이 나를 짝사랑하는 아빠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리고 너무 고마워서.... 짜증을 내며 우는 딸아이의 등이라도 토닥거려 주고 싶었건만, 또 매섭게 몰아붙이면 어쩌나 겁이나 아빠는 그저 애틋하게 바라만 보네요.
아버지의 그 ‘기다림’을 드라마 속에서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안양’에 있었는데 집은 ‘안산’이었습니다. 좌석버스를 타야지만 겨우 학교를 갈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아버지 직장이 안양 방향인지라 등·하교를 매일 아버지 차를 타고 할 수 있었죠. 어쩌다 한 번 버스를 탔을 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힘든 것 모르고 통학을 했습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자율학습을 마치고 교문을 나오는 저를 아버지께서는 늘 기다리셨죠. 차에 타면 가면서 먹으라고 항상 ‘핫도그’와 ‘갈아 만든 배’를 주셨습니다. 어렸던 저는 그러한 아버지의 기다림이, 아버지께서 주시는 핫도그와 음료수가 그저 당연한 건 줄만 알았습니다. 조금 더 철이 들어서야 알겠더군요. 그 모든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IMF시대를 살아가던 아버지께서는 일이 많이 없으셔서 충분히 일찍 귀가하실 수 있으셨음에도 세 시간, 네 시간 하염없이 아들을 기다리셨음을, 때로는 돈이 부족해 동료에게 빌려서라도 기어코 아들에게 핫도그와 음료수를 주셨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더군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가족의 사랑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늘 기다려 주는 가족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자 축복입니다. 희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할 사람은 누구도 아닌 우리의 가족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적어도 오늘은 가족과 함께 기쁜 희년의 하루를 보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