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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5-14 10:37:10 조회수 : 44

“어제는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몇몇 언어학자는 사람, 사랑, 삶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본류(本流)를 만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세 단어 모두 하나의 어원에서 파생했다는 것이다.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이기주, 『언어의 온도』)


모든 사람은 삶에서 목적을 지닌다고 하며 특별히 최종목적은 참 행복을 향한다고 합니다. 행복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행복한 상황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는 기준은 무엇으로 들 수 있을까요? ‘무엇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한가?’ 내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떠한 상태에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것이 행복에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무엇이 있을까요? ‘누구와 함께 있는가?’ 어쩌면 이 역시 또 다른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행복한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라고 누군가는 말하고 저는 이 말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이나 상황에만 그치지 않고, 회상하거나 기대함으로써 커질 수 있습니다. 행복은 멈춰있지 않고 변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행복한 삶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행복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행복한 삶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이라면 이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나와 함께 하는 이들과 사랑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은 사랑이신 성부와의 일치를 드러내셨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또 사랑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이제 그것을 기억하여 행하라 명하십니다. 하지만 사랑을 하는 것은 때론 너무나 벅찹니다. 싫어서, 나와 맞지 않아서, 힘들어서. 그래도 노력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네모난 받침의 사람이 깎여 둥글게 되면 사랑이 됩니다. 어쩌면 삶이란 사람이 사랑을 위해 함께 희생하는 과정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