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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과 순교의 월계관을 쓴 정정혜 엘리사벳 (축일 9월 20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5-30 09:16:00 조회수 : 170

정정혜(1797~1839)는 정약종 순교자와 유소사 성녀의 딸로 경기도 광주 마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정하상 성인의 여동생이기도 합니다. 네 살 때 박해를 피해 서울로 이사 왔으며,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다섯 살이던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가 순교했고, 정정혜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들은 붙잡혔습니다. 다행히 재산만 몰수당하고 풀려났습니다. 정정혜는 어머니와 함께 마재의 친척 집으로 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 친척들은 자신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천주교 신자인 정정혜 가족을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소외와 굶주림 그리고 추위로 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정정혜는 바느질과 길쌈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을 오가는 오빠 정하상을 정성껏 뒷바라지했습니다. 친척들은 정정혜의 아름다운 마음과 훌륭한 덕에 감동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천주교가 정정혜 집안을 다 망쳐놓았다.”라고 했으나 정정혜의 덕에 이끌려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정정혜는 하느님께 동정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서른 살쯤 되었을 때 갖가지 유혹이 찾아와 그 약속이 약해졌습니다. 정정혜는 유혹을 이기기 위해 기도와 단식과 고행을 실천해 결국 유혹을 극복했습니다. 정정혜는 서양의 성직자들이 조선에 입국해 조선의 신자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해주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 기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앵베르 주교와 두 명의 신부가 조선에 무사히 입국해 정정혜 집으로 왔습니다. 정정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그들을 정성껏 보필했습니다. 정정혜 집으로 신입 교우를 비롯해 많은 교우가 모여들었습니다. 정정혜는 그들을 열심히 가르쳤고, 사정이 어려운 신자들은 잘 보살폈습니다. 앵베르 주교는 “정정혜 엘리사벳은 여회장으로서 맡은 소임을 참으로 헌신적으로 수행했습니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주교가 시골로 피신했을 때, 정정혜는 목자 잃은 교우들을 돌보았고, 감옥에 갇힌 교우들에게는 음식과 옷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정정혜는 어머니, 정하상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포도대장이 직접 정정혜를 신문했습니다. “네가 천주학을 한다니 정말이냐?” “그렇소.” “누구에게 배웠느냐?” “어머니에게 배웠소.” “천주를 배반하라.” “그렇게 할 수 없소.” 그러자 정정혜에게 혹독한 형벌이 가해졌습니다. 일곱 번 신문에 3백 대가 넘는 곤장을 맞았습니다.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포도청에서는 도저히 배교시키기 힘들다고 판단해 형조로 이송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여섯 번의 신문과 가혹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결국, 정정혜에게 참수형이 선고되었고, 서소문 밖 형장에서 영광스럽게 순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