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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바오로 2세와 식스토 4세의 희년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6-05 13:54:55 조회수 : 61

1464년 9월 16일에 교황으로 선출된, 베네치아 출신의 바오로 2세는 1470년 4월 19일, 희년을 25년마다 거행하도록 하는 칙서 「형언할 수 없는 섭리(Ineffabili providentia)」를 반포합니다. 이 칙서에서 교황은 먼저 1300~1450년까지 희년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했습니다. 이어 인간의 짧은 수명, 빈번한 전염병의 창궐 등으로, 극히 적은 이들만이 대사의 은혜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1475년을 염두하고 기존의 33년 주기의 희년을 25년 주기로 축소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1471년 7월 26일 뇌졸중으로 갑자기 선종하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후계자로 선출된 사보나 출신의 교황 식스토 4세는 1473년 8월 29일, 칙서 「Quemadmodum Operosi」 에서 전임 교황이 정한 25년 주기를 따라, 1474년 성탄 대축일 전야부터 시작되어 그다음 해에 끝나게 될 희년을 선포했습니다. 이때부터 25년마다 희년을 지내는 관습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됩니다. 

교황 식스토 4세는 1473년부터 희년 맞이 준비를 하였는데, 순례자들의 정체를 피하고자 오래전에 무너졌던 ‘폰테 로토(Ponte Rotto)’를 새로 지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폰테 시스토(Ponte Sisto)’라 불렀고, 로마의 고대 수로인 아쿠아 비르고(Aqua Virgo)를 퀴리날레에서 트레비 분수까지 연장하였습니다. 또한, 새 도로를 건설하고 옛 도로는 확장 및 재정비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딴 시스티나 경당도 지었습니다.

한편, 식스토 4세는 로마 방문을 장려하고 희년의 거행 자체가 축소되거나 방해받지 않도록, 성년 기간 로마 외의 다른 여러 성당, 수도원, 경건한 장소들에 그동안 베풀어진 다양한 대사들을 중지시켰고, 이 조치는 이후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475년 희년 동안 외국 순례자들의 유입은 전반적으로 적었다고 전해집니다. 부르군디 전쟁(1474~1477년)으로 알프스 북쪽과 접한 북이탈리아 근처의 교통로와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았고, 1470년대 초반,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 내부의 갈등과 그에 따른 주변국의 개입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으로, 로마로 가는 주요 순례길 중 하나인 밀라노도 위험지역이 되어, 이러한 지역의 불안이 순례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11월경 로마는 도시의 총독 사망과, 티베르강의 끔찍한 홍수로 큰 타격을 입었고, 이어 흑사병과 유사한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순례자들이 로마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식스토 교황은 1476년 볼로냐에서 일종의 ‘희년의 연장 행사’를 허가 하였습니다. 조카들을 추기경으로 임명해 족벌주의자로 알려진 식스토 4세 교황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의 불명예스러운 전쟁에 휘말리기도 하였지만, 위대한 미술가와 조각가를 로마로 불렀고, 교회음악을 장려하여 시스티나 성가대를 만들었으며, 바티칸 문서고를 설치하는 등 로마를 중세 도시에서 르네상스 도시로 바꾼 르네상스 교황 중의 한 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