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자교리를 하며 교리를 준비하기 가장 어려운 과를 정하라고 한다면 역시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일 것입니다. 저는 삼위일체 교리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학부 3학년 삼위일체 수업을 들었을 때, 담당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당시 첫 수업 때 “저는 삼위일체를 30년 이상 공부했고 가르쳤지만, 아직도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기에 신비라고 불립니다.”라고 하셨는데 당시 그 말씀이 너무나 인상 깊었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언어, 지혜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창조주의 신비는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닌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신앙을 키워가며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신비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체험은 일종의 앎 또는 지식을 통한 '경험'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에는 우리에게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보여주신 창조, 인류 구원, 교회의 존재까지 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하나의 이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도 시기가 있고 준비가 필요하듯 주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사랑을 정의 내리고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신비 역시 그 의미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정의 내리기란 어려우며, 그 위대함을 받아들일 준비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모양이 다양한 건지도 모릅니다. 다양함 안에서 주님의 다채로운 사랑을 느낍니다. 다양한 사랑은 큰 사랑을 준비하게 하며 주님의 그 위대한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이해하기 쉽지 않으나 ‘사랑’으로 경험하고 준비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