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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에 순교한 최영이 바르바라 (축일 9월 20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7-04 09:21:36 조회수 : 43

최영이(1818~1840)는 서울의 유명한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성인 최창흡, 어머니는 성녀 손소벽이며, 남편 조신철 역시 순교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최영이는 어려서부터 신심이 매우 깊었습니다. 부모가 최영이를 시집보내려 하자 “저는 남편을 선택할 때 지체가 높고 낮고, 재산이 많고 적고,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글을 배운 ‘열심한 신자’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영이는 동지사(冬至使) 일행으로 북경을 오가며 성직자 영입에 큰 역할을 했던 조신철과 결혼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습니다. 포졸들이 갑자기 집을 습격해, 최영이는 친정 부모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감옥에 두 살 된 어린 딸을 안고 감옥에 들어갔으나, 극악한 감옥에서 어린 딸이 받을 고통을 생각하면 자칫 배교할 것 같아 어린 딸을 밖에 있는 친척에게 맡겼습니다. 최영이도 어린 아들을 감옥에 데리고 들어왔으나 어머니처럼 친척에게 어린 아들을 맡겼습니다. 


포도대장이 최영이를 문초했습니다. “천주교를 배교하고, 천주교 신자들 이름을 대라. 또한, 너희 집에서 나온 천주교 물건들(서적과 성물)이 누구 것인지 대라.” 그러자 최영이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천주를 배반할 수 없소. 내가 아는 천주교 신자들도 없소. 천주교 물건이 어떻게 우리 집에 들어왔는지 나는 모르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 성물은 남편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형리는 최영이를 혹독하게 고문했습니다. 두 번의 주뢰를 틀고, 곤장을 무려 260대나 맞았습니다. 형조로 이송된 후에도 세 차례나 잔인하게 고문을 받았으나, 최영이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형조에서 조정으로 최영이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는 문서를 올렸습니다. “최영이는 가죽과 골수까지 사교(邪敎)에 물들었고 온몸이 귀신같이 되었습니다. 이같이 악을 고집하는 자는 이 광명천지에 용납하기 어려운지라 사형을 선고해주시길 청합니다.” 

그리하여 최영이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그녀는 죽기 전에 교우들에게 옥중 편지를 썼습니다. 

“부모와 남편 모두 순교했으니 

내 마음이 어찌 편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천국을 생각하면 스스로 위로받으니 

천주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지금 기쁨이 넘쳐 흐릅니다.” 


스물두 살의 최영이는 1840년 2월 1일에 당고개에서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