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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7-11 11:17:47 조회수 : 36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 교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널리 알려진 복음 말씀이기 때문에 신자가 아니더라도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유명함과는 별개로 오늘 말씀이 담아내고 있는 핵심을 우리 실제 삶 속에서 살고 있는지 묻는다면 어떠할까요? 일단 저부터도 스스로 성찰하게 됩니다.


강도를 당해 죽어가던 사람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어 준 인물은 다름 아닌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고대 이스라엘의 남북왕조 시절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게 멸망한 후, 그곳에 살던 유다인들과 아시리아가 정책적으로 이주시킨 이민족들이 결합한 혼혈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믿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태생적인 특징은 유배 이후에 이스라엘에 돌아와서 주도권을 차지한 소위 정통 유다인들이 중요시하던 혈통적, 종교적 순수성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님 시대까지 끝없는 반목과 배척, 심지어는 서로를 향해 테러를 일으키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요한 복음에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물을 같이 마시는 상황까지 피하였다.’라는 증언이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요한 4,9), 그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서로 가장 증오하고 미워하는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다인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이웃'이 되어준 인물의 예시로 사마리아인을 들며, ‘너희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아무리 하찮고 역겹게 여기는 대상일지라도, 그를 내 이웃으로서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복음에 등장한 사마리아인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원수, 외국인, 학벌, 출신 지역, 나와 생각이나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사람 등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그런 이들'을 두고 ‘주님,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저의 이웃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비유 속 강도당한 사람을 지나치던 사제나 레위인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각자가 마음에 품고 있는 혐오와 배척을 부수고 주님 사랑 안으로 나아가라는 예수님의 적극적인 초대와 명령입니다. 일찍이 우리는 부활 시기를 지내며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요한 14,15)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함께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하며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시 태어난 이들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판단과 편견이 우리가 주님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겠지만, 주님의 말씀을 따라 항상 선으로 나아가려는 지향과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사신 모습일 것이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일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