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 ‘동물의 왕국’을 봅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동물들을 보면서 때론 웃고 때론 감탄하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정말 넓고 다채롭습니다.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놀랍기만 하고요. 그토록 경이로운 자연의 드라마 중에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슴 한 마리가 ‘늪’에 빠졌습니다. 사슴이란 녀석은 워낙에 각력(脚力)이 뛰어나기에 쉽게 빠져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근데 각력도 결국 그 힘을 받아줄 단단한 땅이 있어야 위력을 발휘하더군요. 물렁물렁한 늪지대에서 사슴의 각력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점점 더 늪 속으로 빠져들었어요. 참 안타까운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늪이 아프리카나 아마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더군요. 우리 사회 곳곳에 더 치명적인 늪이 존재합니다. 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늪에 빠진 것만 같았어요.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빠져들더군요.” 무슨 소리일까요? 네, 바로 중독(中毒)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중독에도 여러 종류가 있죠. 도박중독,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그런데 각각의 중독에 빠진 이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순간은 마치 ‘늪’에 빠진 것만 같았다고….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식 투자를 하는 직장인 10명 중 2명이 스스로 중독이라고 인정했다 합니다. 2020년대 들어 주식 투자와 관련하여 중독 상담을 받은 사람이 2010년대보다 6배 가까이 증가했다고도 하고요. 2024년 한 통계에 따르면 ‘도박중독 치유 서비스’를 이용한 10대 청소년이 2021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합니다. 마약은 어떨까요? 2021년 우리나라의 약물로 인한 사망자 수는 559명으로, 2011년 205명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가히 ‘중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난 중독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이 나약한 거라고…. 하지만 누구도 늪을 좋아해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잘 몰라서, 그것이 늪인지 몰라서, 그냥 마음만 먹으면 빠져나올 수 있는 얕은 구덩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싶어 나오려고 하지만 이미 늦은 경우가 허다하죠. 하지만 사람은 사슴과는 다릅니다. 사람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하죠. 사람은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힘을 모으면 늪을 없앨 수도 있습니다. 올 희년의 가장 큰 주제는 ‘해방(解放)’입니다. 하느님께서 ‘중독’이라는 늪에 빠진 내 가족을, 내 친구를 해방하시길 청하며, 사회에 퍼져 있는 중독의 늪을 없애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