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순례를 꿈꾸게 하는 분명한 이유 중 하나는 ‘평화를 가득 머금은 아시시의 아름다움’입니다. 아시시가 위치한 수바시오(Subasio)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그러한데, 여기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정신까지 더해지면 순례자들은 벅찬 감동과 영적 평화로 충만하게 됩니다.
아시시 출신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는 다미아노의 십자가를 통해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고쳐 세워라.”라는 주님의 소명을 받았고, 이후 누더기 수도복 안에 예수님의 성흔(聖痕, 오상, Stigmata)을 간직한 채 선종하시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 13세기 초, 허물어지듯 혼탁했던 교회는 성인의 ‘청빈한 삶’과 ‘탁발’이라는 새로운 수도 생활을 통해 각성하게 되었고, 이는 주님의 집을 다시 고쳐 세우는 쇄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작은 그리스도’라고 불릴 만큼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셨던 성인의 자취와 향기가 희년의 기쁨과 함께 아시시의 골목마다 가득합니다.
아시시에는 순례하실 성지가 무척 많습니다. 먼저 하층민들이 살던 아시시 성 아래 동네에는 프란치스코회의 요람인 ‘포르지운꼴라’(Porziuncola)와 그 위에 이중으로 세워진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이 있는데, 이 안에서 성인께서 선종하신 장소(Transito), 가시 없는 장미 정원 등을 순례하실 수 있습니다.
수바시오산 중턱, 아시시 성벽 안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적 동반자였던 글라라 성녀(1194~1253)의 유해가 모셔진 ‘성녀 글라라 대성당’(Basilica di Santa Chiara, 다미아노 십자가 원본), 성인께서 탄생하신 마구간과 ‘생가 성당’(Chiesa Nuova), 성인의 무덤 위에 건축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Basilica Papale di San Francesco)이 길을 따라 이어집니다.
중세의 한복판을 걷는 듯, 길을 걸으며 가난과 평화로 행복했던(마태 5,3-12 참조)성인과 우리의 평화, 나의 가난과 행복을 묵상해 봅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중에서)
아시시 성안에는 오는 9월 7일 시성 되실 ‘하느님의 인플루언서’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Carlo Acutis 1991~2006)의 시신이 모셔진 성당(Chiesa di Santa Maria Maggiore)을 비롯하여 많은 성당과 수도원들이 있으니, 충분히 머물면서 순례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