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이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어린 시절, 성전에 들어가면 맨 앞줄에 앉아 기도하고 계신 어르신이 늘 보였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같은 자리에서 묵상을 하고 계셨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성당에 가보면 어르신께서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저도 누구보다 빨리 성당에 도착해 기도하는 편이었지만, 어르신께선 그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어르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청하고 계실까, 하느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계실까. 어르신께서 어떤 기도를 바치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기도하는 그 순간, 어르신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몇 년 전, 어르신께서는 지상의 순례를 마치시고 하느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 남기신 신앙의 유산은 지금도 제 마음 안에 살아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청원과, 현세를 살아가는 인간과 관련된 청원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필요한 것을 아버지께 청합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보다, 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 적이 더욱 많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청원도 분명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베푸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에게 전하시는 방식과 모습은 우리가 원하던 방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강생의 신비를 알리는 천사의 소식이 성모님께는 인간적인 당혹감으로 다가왔었고, 부활과 구원의 은총을 인간에게 전하신 방식은 어린양의 십자가와 희생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통과 도전 속에는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힘겹더라도 그 모든 순간을 안고 기도한다면, 살아간다면,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