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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속으로 ‘순교’를 결심한 남경문 베드로 (축일 9월 20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7-31 15:00:56 조회수 : 69

남경문(1796~1846)은 서울 중인 계급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교인이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아들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남경문은 한양을 지키던 금위영(禁衛營)의 군사였습니다. 그는 스무 살 무렵, 교우와 결혼했습니다. 남경문이 천주교에 입교한 것은 박 베드로라는 교우의 적극적인 권유 덕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경문은 큰 병에 걸렸습니다. 생명이 위독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는 살아난 것에 대해 천주께 깊이 감사드리고 그 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온 유방제 신부를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유 신부는 남경문의 신앙심과 희생정신 그리고 성실함을 보고 그를 회장으로 임명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습니다. 남경문은 천주교 신자라 포졸들에게 체포될 뻔했습니다. 그런데 교우가 아닌 사람의 도움으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박해가 잠잠해지자 냉담자가 된 남경문은 3년 동안 타락한 상태로 살다가 어느 날, 짙은 허무감을 느꼈습니다. 방탕하게 산 것을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남경문은 속죄의 한 방편으로 한겨울에 불을 때지 않은 골방에 들어가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남경문이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토록 많은 죄를 지은 내가 천국에 가려면 ‘순교’하는 길밖에는 없네.” 남경문은 죄에 대한 보속으로 ‘순교’를 결심한 것입니다. 신앙을 증거하는 일 가운데 순교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무렵 임성룡이라는 교우가 조선에 입국한 김대건 신부를 도와 활동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의 밀고로 남경문도 체포되어 포도청 감옥에 갇혔습니다. 포졸들은 남경문의 어머니와 아내까지 체포했고, 집과 재산도 몰수했습니다. 남경문은 금위영 군사를 증명하는 패(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패를 떼어 포도대장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나는 천주께서 창조하신 물건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나라에서 주는 쌀도 많이 받아먹었소. 이제 죽음을 앞두고 이 패를 나라에 반납하오.” 포도대장은 배교만 하면 살려주고 신분도 유지시켜 주겠다고 회유했습니다. 그러나 남경문은 절대 배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포도대장은 배교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때려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형리에게 곤장을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얼마나 혹독하게 쳤는지 어깨 위에서 곤장이 부러져 나갈 정도였습니다. 형리는 남경문의 두 손을 공중에 매달고 마구 매질했습니다. 결국 남경문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승정원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남경문은 사도(邪道)를 행한 자로 

여러 번 고문했으나 죽기에 이르기까지 배교하지

아니하므로 혹독하게 매질해 장하(杖下)에 죽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