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 있는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도착하면 언제든 문을 열어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항상 봉사하고 배려하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를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그 말씀이 향하는 대상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결코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로 복음의 비유에 등장하는 종처럼 예수님께서 먼저 사람들에게 봉사하시는 모습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수난 전날, 최후의 만찬 때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말씀하시며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기피하고 외면하던 병자와 죄인들과도 마치 그들 가운데 하나인 것처럼 계시며 병을 고쳐주시고 죄를 용서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깨어 기다리는 종’은 특정한 누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 그 말씀을 듣고 있는 바로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모범으로 삼고 따라가야 할 아버지이신 주님께서 그 말씀을 하신 자신부터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 중에 때로 한탄하곤 합니다. ‘내 가족이 먼저 잘해주면 좋을텐데, 본당의 봉사자들이 먼저 잘해주면 좋을 텐데, 본당의 수녀님과 신부님들이 먼저 잘해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입니다. 저 역시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먼저 해주기를 요구하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다른 이의 책임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 말자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창세기에서 죄를 지었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왜 따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느냐?’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남자와 여자는 ‘여자가 저에게 시켰습니다. 뱀이 저에게 시켰습니다.’ 하며 서로의 탓을 하였습니다. 물론 아담은 하와의 제안을 받았고, 하와는 뱀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뉘우치지 않던 그 모습이 하느님의 마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상처입혔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에게 종이 되어줄 때, 내가 십자가를 지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할 때, 우리는 주님을 따라 사는 것이고, 주님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과 습관과도 싸워나가야 하는 힘든 일이겠지만, 그 길의 끝에는 우리를 맞이하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주님께서 계시기에 우리의 지향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한 주간 성실한 종으로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