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몇몇 국회의원들이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하였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먼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인공임신중지’라는 말로 바꿉니다. 그리고 이 인공임신중지를 임산부 본인의 동의하에 수술뿐 아니라 약물에 의해서도 가능하도록 하고, 이에 대한 보험급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죠. 이를 제안한 이유는, 여성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인공임신중지를 가능하게 하여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확보하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의 눈엔 특별히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이 두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더 자세히는 두 단어 뒤에 똑같이 붙어 있는 ‘권’이라는 글자에 주목해 봅니다.
이 ‘권(權)’이라는 글자는 권세나 권력, 권한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 글자가 접미사로 사용될 때는 ‘권리’의 뜻을 더하죠. 그러므로 건강권, 자기결정권이라 하면, 건강할 권리,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권리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 따르면 권리란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힘이나 자격’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연(當然)이란 마땅히 그러한 무언가를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권리란 마땅히 그러한, 누가 생각해도 과연 옳은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힘이요 자격입니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 그대로 세상의 모든 여성이 건강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주도적인 삶을 요구하는 것은 과연 마땅하고 옳습니다. 그런데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임신을 중지시켜야 한다고요?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악당 ‘타노스’는 사실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는 문제의 원인이 인구 증가에 있다고 분석하죠. 그래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인류의 절반을 없애려고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말한 것처럼, 세상을 위한 그의 좋은 ‘목적’이 이러한 경악스러운 ‘수단’을 정당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주차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타인의 차를 부수진 않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남의 권리를 빼앗는 것은 옳지 않죠. 하물며 하느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뱃속 태아의 생명권을 빼앗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마땅하고 옳은 일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마땅하고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생명을 희생해서까지 요구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에 주목해 봅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의 힘으로 인간의 권리를 천명하고 이 권리를 어디에서나 증진하는 현대의 힘찬 움직임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복음 정신에 젖어들어, 온갖 그릇된 자율에서 보호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 법의 모든 규범에서 벗어날 때에 비로소 우리의 인간 권리가 완전히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보존되기는커녕 오히려 소멸되고 만다”(사목 헌장, 41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