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말씀 잘 들으셨나요? 오늘 복음은 그 자체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구약의 구리 뱀 설화와 같이 사전 지식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 영원한 생명, 믿음과 심판에 관한 추상적이고 비유적인 표현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 복음을 단지 어려운 이야기로 단정하기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향하고 있는 니코데모를 시작으로 그 의미를 천천히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코데모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면서 예수님을 적대하던 바리사이파에 속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니코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 것이 오늘 복음 말씀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왜 니코데모는 굳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최고 의회 의원이라는 신분, 동료 바리사이들과의 관계 때문에 인적 없는 밤이 되어서야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니코데모처럼 예수님께 당당히 나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니코데모와 같이 체면일 수도 있고, 사회적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미움이나 갈등, 바쁜 일상에서 비롯되는 피로, 신앙 자체에 대한 의심이나 회의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짙고 어두운 밤이 와도 그 뒤에는 항상 밝은 여명이 오듯,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어둠 속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복음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증거가 바로 오늘 우리가 무엇보다 성대하게 기리며 바라보는 ‘십자가’입니다. 세상 어느 신이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단순히 옛날에 살다 비참하게 죽은 한 인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 전부를 바치신 구세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담긴 주님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사랑이 우리의 밤을 몰아낼 태양이 되어줄 것입니다. 물론 매일같이 십자가를 바라보아도, 일상을 달려가야 하는 신앙 여정 안에서 항상 마음이 불타오르고 기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에게 선포되는 주님의 말씀과 그분의 성체,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라고 하신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항상 성실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공로를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