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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한 정의배 마르코 (축일 9월 20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9-19 08:39:40 조회수 : 44

정의배(1795~1866)는 서울 창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유학(儒學)을 배워 한문에 능통했습니다. 그래서 서당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마흔이 넘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우연히 프랑스 선교사인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그리고 샤스탕 신부의 ‘순교’를 목격했습니다. 그전까지 그는 천주교를 ‘제사를 거부하는 나쁜 종교’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법으로 천주교를 금지하는 것은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부들과 신자들이 기쁜 모습으로 순교하는 것을 보고는 감동했습니다. 자신이 믿던 유교를 뛰어넘는 ‘그 숭고한 종교’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교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교리를 깨우쳤고 그 기쁨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전에는 천주교 신자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천주교 신자가 되어야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의배는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페레올 주교가 조선에 입국했습니다. 주교는 정의배의 신앙심과 덕행을 보고 회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정의배는 순교할 때까지 20여 년 동안 헌신적으로 회장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했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그를 ‘성인(聖人)’이라 했고, 베르뇌 주교는 그를 ‘천국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1854년에 조선에 ‘성영회’(聖纓會)가 만들어졌습니다. 성영회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매스트로 신부가 조선에 도입했습니다. 성영회는 죽음에 임박한 비신자 어린아이에게 대세를 주고, 버려진 아이들을 한 명씩 독실한 신자 가정에 맡겨 키우는 ‘사회복지제도’였습니다. 정의배는 성영회에 참여해 버려진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1866년 겨울,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었습니다. 주교 하인의 밀고로 정의배도 체포되었습니다. 그의 어깨에는 죄인을 표시하는 붉은 밧줄이 걸렸습니다. 포졸은 노인 정의배의 경건한 모습에 압도되어 포박하지 못했습니다. 정의배는 포도청에 갇혔다가 의금부로 이송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베르뇌 주교와 신부들도 갇혀 있었습니다. 정의배는 천주교 교인들의 우두머리라 더욱 혹독하게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는 고문을 당하면서 당당히 말했습니다. “당신들 눈에는 내가 ‘죽을죄를 지은 사람’으로 보이니 어서 나를 죽이시오!” 결국 정의배는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습니다. 군문효수(軍門梟首)는 목을 베어 군문 앞에 매다는 잔인한 형벌입니다. 망나니에 의해 정의배의 머리는 단칼에 떨어졌습니다. 머리카락이 없기에 수염으로 머리를 군문에 매달았습니다. 정의배는 그렇게 순교했습니다. 

“‘순교’는 정말 좋은 것입니다.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죽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정의배 마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