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세영(1845~1866)은 황해도 서흥 향교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선비였던 아버지는 아들을 총명하게 잘 키웠습니다. 우세영은 열여덟 살에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시험을 보러 간 자리에서 우연히 천주교 신자를 만나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신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관직(官職)에 대한 뜻을 접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서울로 세례를 받으러 가겠다고 하자 화를 내며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집을 나온 우세영은 서울에 있는 베르뇌 주교를 찾아갔습니다. 주교는 우세영의 신앙이 가족들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해 세례를 유보했습니다. 그러곤 서울의 회장인 정의배에게 교육을 맡겼습니다. 정 회장은 우세영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우세영은 충분한 교리 지식을 갖추게 되었고,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교가 말했습니다. “알렉시오, 천주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꼭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세영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향으로 갔습니다. 가족들은 우세영을 욕하고 때렸습니다. 그러곤 집안에 가두었습니다. 견딜 수 없어 도망쳐 나온 우세영은 다시 서울로 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버지가 우세영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간 이들에게 아버지는 천주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놀란 우세영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주교를 잘 설명했습니다. 가족들은 천주교가 ‘훌륭한 종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친척들까지 스무 명이나 입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해도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가족을 적대시하자 고향을 떠나 평안도로 이사했습니다. 정월 초, 우세영은 공소 회장집으로 세배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다른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평양 감영으로 끌려간 우세영은 고문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 그만 배교하고 말았습니다. 평양감사는 배교자들에게 감옥에 갇힌 교우들을 매질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의 시신은 대동강에 버리라고 했습니다. 우세영은 그 일을 하며 배교한 것을 크게 뉘우쳤습니다. “무슨 낯으로 천주께서 창조하신 하늘을 보고 땅을 밟을 수 있겠는가!”라며 통곡했습니다. 우세영은 서울 포도청에 감금된 베르뇌 주교를 찾아가 주교에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세영은 그곳에서 다시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배교한다고 맹세하면 풀어줄 것이다.”
“나는 그런 맹세를 할 줄 모르오!”
“그럼 너는 죽을 것이다.”
“나는 죽으러 왔소!”
우세영은 그렇게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