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경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된 긴 박해 시기 동안 수많은 순교자가 목숨을 바쳐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신앙을 증거했고, 250여 년간의 엄혹한 박해 속에서도 오히려 신자수는 계속 증가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상징인 ‘콜로세움’(Colosseum)은 네로 황제가 죽은 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티투스 황제에 의해 80년경에 완공되었습니다. 박해 시기 동안 이곳에서 피로써 신앙을 증거하신 순교자들을 기리며, 베네딕토 14세 교황(1740-1758 재위)은 콜로세움을 거룩한 장소로 선포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 되면 전 세계 신자들이 교황님과 함께 이곳에서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며 행렬합니다.
로마 시대에 일반 하층민들이 묻혔던 공동묘지인 ‘카타콤베’(움푹 파인 땅이라는 뜻)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잠들어 있는 곳’(Koimeterion, Cemetery, 안식처)이라는 의미도 갖게 되었습니다. 박해 중에도 친교 속에 전례를 거행하며 주님의 말씀과 빵을 나누던(사도 2,42 참조)교우들이 콜로세움에서 순교한 후 불에 탄 주검으로, 맹수에 찢긴 시신으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영원한 안식 속에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신자들은 일반인들의 무덤과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을 구분하고, 그들의 숭고한 사랑과 거룩한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그 무덤 위에 특별한 표시를 남겼습니다. 그 표시들은 초기 교회의 신앙고백이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톨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ΙΧΘΥΣ’(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와 ‘키-로 십자가’(☧ 그리스어 크리스토스 Χριστοσ의 첫 두 알파벳을 겹쳐놓은 것)를 카타콤베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하에 층층이 묻혀 있는 수천의 시신들, 죽음의 내음과 방향을 알 수 없는 미로 속 어둠 때문에, 로마 병사들조차 꺼리던 공간인 이곳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죽은 자들의 도시)는 박해받던 신자들에게는 찬미와 기도로 가득한 ‘하늘의 공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313년 박해가 끝난 후 성 멜키아데스 교황(311~314 재위)이 카타콤베를 성지로 선포하였고, 성 다마소 1세 교황(366~384 재위)은 성지를 정비하여 순례자들의 편의를 돕고, 성지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했습니다. 이후 순교 성인들 곁에 묻히고자 하는 신자들이 많아지면서 카타콤베 내에 새로운 형태의 아치형 무덤과 가족묘들이 생기고 이는 5세기 이후까지 확장됩니다.
로마 성벽 외곽의 많은 카타콤베 가운데 ‘희망의 순례자들’이 순례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성지는 가장 규모가 큰 ‘성 갈리스토 카타콤베(Catacombe di San Callisto)’로, 박해 시대에 순교한 성인 교황님들과 체칠리아 성녀의 무덤이 있던 장소입니다(현재 유해는 다른 곳에 안치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