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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영 비오 신부(분당야탑동 본당 보좌)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9-26 10:59:55 조회수 : 65

어느 날 선배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을 때 일입니다. 지하철역 근처를 지나는데, 차가운 바닥에 누워 계시는 노숙인 한 분이 보였습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누구 하나 시선을 주거나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앞장서 걸어가던 선배가 그 노숙인 앞에 멈춰 서더니, 지갑을 열어 가진 돈을 전부 꺼내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형, 그냥 지나갈 수 있었을텐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셨나요?” 

후배의 철없는 질문에 선배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


그때는 단순히 연민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당시 선배의 마음에 다시 머물러보니, 그것은 연민을 넘어선 존재의 내어줌, 자신을 비우는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배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 한 인간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 자신이 복음에 등장하는 바로 그 부자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 우리의 관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복음 속 부자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이웃과 멀어지고, 형제의 눈물에 맺혀 있는 하느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합니다. 결국 이웃과 멀어질수록, 나 자신 안에 갇혀 살아갈수록, 우리는 하느님과도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라자로라는 이름은 남아 있지만, 부자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라자로’는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라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이가 그의 이름을 잊는다 하여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십니다. 설령 사람은 잊는다고 하여도, 하느님께서는 잊지 않고 반드시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소중한 그 무언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비를 실천할 때, 우리는 부자가 그토록 염원했던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