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예언자들이 행한 다양한 상징 행위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상징 행위를 통해 신탁을 전한 이는 ‘아히야’입니다. 그는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은 뒤 열 조각을 예로보암(훗날 북왕국 태조)에게 주며,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쪼개질 것임을 예고(1열왕 11,29-39)했습니다. 엘리사는 활과 화살로 북왕국 임금 여호아스가 몇 번 승리할 지 알렸고(2열왕 13,14-19), 호세아는 하느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는 백성을 꾸짖기 위해 창녀인 고메르를 아내로 맞았습니다(호세 1,2-3). 이런 상징 행위는 주님의 뜻을 백성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어, 신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기원전 7-6세기, 남왕국 유다가 멸망할 즈음에는 예레미야가 상징 행위를 여러 번 행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사촌 하나므엘의 땅을 대신 사들이는 ‘구원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남왕국이 멸망을 앞두고 있지만, 회개하면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임을 예고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구원자가 된 배경은, 희년과 관련된 속량 제도(레위 25,23-31)에 있습니다. 이는 백성이 가난 등의 이유로 가산을 팔아도 언제든 되살 수 있음을 원칙으로 합니다. 본인에게 능력이 없으면 형제.친족이 대신 대가를 치러줄 수 있는데, 예레미야가 이런 대속자, 곧 “구원자”(레위 25,25; 룻 4,3-4 등)가 되어준 것입니다.
관련 내용은 예레미야 32장에 나옵니다. 이는 남왕국의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가 예레미야에게 한 질문(3-5절)과 예레미야가 전달한 응답 신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임금의 질문에 답하려고, 예레미야는 사촌의 땅을 사들이는 상징 행위를 합니다(6-15절). 당시 하나므엘은 땅을 처분해야 했고, 그래서 그는 다른 가족이나 지파에게 가산이 넘어가지 않도록 친족인 예레미야가 사게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는 나라의 미래가 암울한 상황이었기에 아무도 구원자 권리를 원하지 않아 예레미야에게 차례가 넘어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명령대로 은 열일곱 세켈을 주고 사촌의 밭을 사들입니다. 이로써 지금은 이스라엘이 주님과 맺은 계약을 위반한 죄로 바빌론에 망할 위기에 있지만, 예레미야가 구원자로 나서서 사촌이 가산을 잃지 않게 해주었듯이 하느님께서도 회복의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나서시어 땅을 되찾아주시리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입니다. 곧 때가 되면 백성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예레미야가 하였듯이 땅을 사고 팔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예레미야의 이런 땅 매매는, 성조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막펠라 동굴을 구입한 뒤(창세 23장) 그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다가 탈출해 가나안을 차지하게 된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곧 예레미야의 상징 행위는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다.’라는 하나므엘의 이름 뜻처럼, 하느님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징벌하시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