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바라보며 대하는지에 대한 묵상 거리를 줍니다. 우리는 미사와 기도 안에서 주님께 다양한 것을 요청하곤 합니다.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해, 바람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정의 안위나 연인을 위해…. 주님께 청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생각과 지향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시며 일용할 양식과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게 해주신 것처럼,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바람과 필요를 말씀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이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분께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와중에 찬미와 감사의 마음 없이 주님을 부르고 있다면, 우리의 모든 기도와 청원은 주님을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나에게 빚을 진 채무자로 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병 환자 열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다시 돌아온 사람은 유다인들에게 불경한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인 한 명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한탄하시고 가슴 아파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지금도 주님께 청원을 드리는 분들이 계실 것이고, 삶 안에서 주님께 나름의 응답을 받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설령 아직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매일의 미사와 성체를 통해 그 옛날 사람들이 받았던 것들에 비해 절대 적지 않은 사랑과 은총을 받고 살아갑니다. 과연 우리는 감사와 찬미를 통해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표현해 드리고 있을까요?
저부터도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것은 아닌지,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모든 것을 투신할 수는 없더라도, 내 감사와 찬미로 주님 영광에 티끌 하나만큼의 영광도 더할 수 없더라도, 사마리아인이 보여주었던 모범을 따라 주님께 합당한 찬미와 감사를 내어드리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주님의 땀방울을 닦아드리는 우리 나름의 자녀 된 공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사랑이신 주님께서는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작은 보답을 결코 하찮게 여기지 않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